[시론] '평균적 인간' 기를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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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시대는 어떤 시대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대량생산의 시대이었다. 대량생산의 시대란 어떤 시대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배가 그렇게 부르지 않은 시대이었다.

예를 들어, TV가 처음 나왔을 때는 사람들은 TV가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가? 우선 TV를 많이 생산하여 하나씩 안겨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대부분이 TV를 갖게 된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그냥 TV가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색다른 것을 찾게 된다.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옵션 등 여러 가지 다른 맛을 찾게 되는 것이다. 까다롭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될 때 바로 대량생산의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

그 새로운 시대란 무엇인가? 바로 소량다품종 시대이다. 즉, 여러 가지 다양한 물건을 조금씩 조금씩 생산하여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기호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기업이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 필요했을까? 그 때는 평균적 인간이 필요했었다. 왜?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정해진 한 두 가지 규격을 많이 생산해야 했기 때문에 무엇보다 어떤 사람의 특별한 능력보다는 여러 사람의 물리적인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고 모든 분야에 조금씩 아는 사람이 필요했었다. 누구 하나가 특별할 필요가 없었다.

소량다품종 시대에는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 평균적인 인간보다는 ‘튀는’사람이 필요하다. 튀는 아이디어, 기발한 착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만이 다양한 소비자들의 특별한 욕구와 기호를 개발하고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시대는 소량 다품종 시대이다. 또 국경이 없어지면서 세계는 바야흐로 무한경쟁의 시대로 확실히 접어들었다. 나라 안의 몇 몇 경쟁자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경쟁자들을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베스트’가 되어야 한다. 어느 분야이든 그 분야에서 최고로 잘 하는 사람을 쓰고 그런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평균적인 사람, 즉, 모든 분야를 조금씩 잘 하는 사람은 어느 한 분야의 천재가 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는 지금 천재를 찾는, 천재를 키우는 경쟁을 하고 있다. 평균적인 인간이 아니라 무엇이든 특별히 잘 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나라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하나도 못하더라도 예를 들어, 디자인 하나만 기가 막히게 잘 한다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조금씩 잘 하는 사람보다도 몇 배, 몇 십배 나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서태지는 아마도 평균적인 인간의 관점에서는 분명히 문제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태지는 우리나라 팝음악의 구도를 바꾸어 놓았고, 우리 팝음악의 경쟁력은 상당 부분 서태지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대학을 중퇴한 빌게이츠도 평균적인 인간의 관점에서는 아마도 모자라는 점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분야를 특별히 좋아하고 잘했기 때문에 바로 20세기 정보통신 기적을 선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교육제도는 어떠한가?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평균적인 인간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모든 과목을 똑같이 조금씩 잘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악의 천재, 미술의 천재도 일단 수학·과학·영어를 어느 정도 잘 하지 못하면 대학에 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앞으로 미술을 전공하고 음악을 전공할 사람이 수학과 과학을 잘 할 무슨 필요가 있는가? 미술의 천재가 수학을 못함으로써 대학에 못 가 미술가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개인뿐 아니라 나라로 봐서도 엄청난 손실이다.

앞으로 대학 입시는 100% 내신에만 의존한다고 한다. 내신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조금씩 잘한다는 것 아닌가? 노래도 어느 정도 잘 불러야 되고, 미술도 어느 정도 잘 그려야 되고,수학도 어느 정도 잘 해야 하고, 영어도 어느 정도 잘 해야 한다.

그래야 평균 성적이 잘 나온다. 문자 그대로 ‘평균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제도이다. 세계는 지금 영재·천재를 양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다니다가 수학이 좋고 수학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 수학만 죽자 사자 열심히 해서 수학의 예비 천재가 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도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한다. 화학 예비 천재·생물 예비 천재·음악 예비 천재 등 각 분야에 이런 예비 천재들이 양산이 될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의식적으로 ‘평균적인 인간’이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 즉, 모든 분야를 골고루 조금씩 잘 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대로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한 분야를 특별히 잘 하는 사람에게는 그 분야의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영재들이 그래도 과학고에 모였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내신 등급제라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과학 잘 하는 예비 영재들을 학교로부터 자퇴하게 만드는 참으로 세계의 흐름에 어긋나는 교육정책을 이 나라는 펴고 있다.

모든 분야에 지식을 잘 취득해야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시민이란 골 고른 ‘인성’교육을 통해서 양성하는 것이지 골 고른 ‘지식’교육을 통해서 양성되는 것이 아님을 왜 우리 교육 당국자는 모르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전성철<세종대 세계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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