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측의 이산가족 '약속위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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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남북간 합의 사항들이 잇따라 연기되거나 주춤거리고 있다.

어제 평양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제2차 남북 경협 실무 접촉은 북측이 불과 회담 하루 전 일방적으로 연기를 통보해 와 무산됐다.

경의선(京義線) 복원을 위한 군 당국간 실무 접촉도 언제 열릴지 모른다. 이달 중순으로 잡혔던 북측의 한라산 관광단 방문도 아무 소식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혈육 상봉.생사 확인.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에 관한 남북간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6.15 공동선언을 우리 국민이 피부로 실감하게 만든 거의 유일한 사업이다. 8백만명에 가까운 이산가족들이 지금도 가슴을 졸이고 있고, 60세 이상 고령자만도 70만명이나 된다.

남북은 지난 6월 말 열린 1차 적십자 회담에서 '면회소 설치 등 구체적인 사항은 비전향 장기수를 전원 송환하는 즉시 적십자 회담을 열어 협의.확정한다' 고 약속했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 송환 후 '뒤늦게' 열린 2차 적십자 회담에선 면회소 설치 등 상봉의 제도화.정례화 협의를 12월의 3차 적십자 회담으로 미뤄 놓았다.

더욱 황당한 일은 2차 회담에서 합의한 이산가족 교환 방문.생사 확인 일정마저 지금 북측의 무성의로 사실상 이뤄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약속대로라면 2차 이산가족 방문 대상자와 생사 확인 명단이 벌써 남북을 오갔어야 하는데 북측은 묵묵부답이다.

지연.연기에 대한 어떤 설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가 아니라 시정의 사소한 상거래라도 이런 무례와 비정상은 생각하기 힘들다.

북한이 대미관계 때문에 일손이 달린다는 말도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식량이고 장기수고간에 무조건 보내기만 했을 뿐 북측을 채근할 지렛대나 담보 하나 챙기지 않은 우리 정부에도 책임이 많다.

이산가족 문제가 이 지경이라면 국군 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은 기대조차 하기 힘들게 됐다. 정부는 응분의 책임을 느끼고 이산가족 사업의 약속 위반에 대한 북측의 확실한 답변과 사과를 받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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