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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10시간] 고소영 신작 '하루'서 유부녀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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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배우 고소영을 말할 땐 항상 ‘톡톡 튄다’는 표현이 접두사처럼 붙는다.

요즘이야 튀는 게 오히려 평범한 세상이지만 그가 연예계에 입문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고소영은 시쳇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X세대 스타였다. 그리고 2000년에도 인기가 여전하다.현재 출연하고 있는 CF만 해도 화장품·신용카드·전자양판점 등 네 개.그만큼 그를 찾는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증거다.

#1.“없어요”

고소영을 만나러 가는 날 하늘은 푸르렀다.“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란 미당 서정주의 시구가 절로 떠올랐다.

목적지는 충주 중앙경찰학교 바로 옆의 과수원.승용차 한 대가 겨우 통과하는 산길을 조금 올라가니 내년 초 개봉할 영화 ‘하루’의 촬영장이 나타났다.희디 흰 꽃잎(영화 소품)이 휘날리는 배나무 아래에서 고소영이 함초롬하게 서 있었다.

‘하루’는 오랜 동안 기다리던 아이가 하루 밖에 살 수 없는 무뇌아로 태어나는 한 부부의 아픔을 그린 영화.그로선 ‘구미호’(1994)‘비트’(97)‘연풍연가''해가 서쪽에서 뜬다면’(98)‘러브’(99)에 이은 여섯 번째 작품이다.이전 작품에서 주로 남성을 떠받쳐주었다면 이번엔 그의 색깔을 제대로 보여준다.

일단 부감이 클 것 같았다.”솔직히 그런 것 없어요.” 직답형이다.

작품마다 긴장감은 마찬가지라는 설명.평소 가깝게 지내는 연예인은? 또 “없어요”다.

상대방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친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언제까지 배우 할래요”란 물음에도 “그런 장기플랜은 없어요”다.

대화는 주로 이런 식이었다.고소영은 서두부터 단정적이다.그만큼 솔직하다는 뜻이다.‘인터뷰’용으로 말을 꾸며보라고 주문하자 “왜,그게 필요하죠?”라며 반박한다.

때론 당돌할 정도.그러나 오해는 이내 풀렸다.그만의 정직함에서 독특한 설득력이 발산되었다.

“지금까지 ‘하루’ 홍보를 다 거절했다고 하는데…”라고 묻자 “TV 연예프로에 제가 나간다고 영화가 성공하나요.결국 작품이 문제죠”라고 대답했다.

#2.“몰라요”

내친 김에 좀 아픈 곳을 꼬집었다.전도연·심은하와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리지만 유독 인상에 남는 작품이 적은 것 같다고 건드렸다.전도연의 ‘접속’‘해피엔드’나 심은하의 ‘미술관 옆 동물원’‘텔미 섬딩’ 같이 말이다.

“그래요.모르겠어요.느끼는 사람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하지만 속단하지 마세요.이제 영화를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해요.트로이카를 말하는 것 자체가 성급하죠.” 얼굴이 붉어질 줄 알았는데 전혀 개의하지 않았다.

‘하루’의 한지승 감독이 다음 장면을 요구했다.카메라 앞에 다시 선 고소영.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연기에 몰입하는 순발력이 대단하다.떨어지는 꽃잎 사이에서 그의 생머리칼이 가을 바람에 일렁였다.“감독님,너무 추워요”라며 엄살도 부린다.

계속되는 인터뷰.한때 ‘고소영족’이란 조어가 나돌 정도로 X세대의 자신감을 대변했던 그가 배우 선배로서 n세대에게 주는 한마디를 주문했다. ‘당찬 미인’ 고소영이 없었다면 이후 이나영·배두나 같은 개성파의 출현을 예측하기 어려웠을 만큼 고소영은 90년대 한국 여배우의 징검다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꾸가 걸작이다.“몰라요. 요즘 애들이 말을 듣나요(웃음).그것보다 남들한테 무슨 충고를 한다는 자체가 저와 어울리지 않아요.”

#3.“좋아요”

고소영에게 붙어다니는 선입견 하나.그의 자신감 넘친 표정, 혹은 빼어난 미모 탓인지 버릇이 없다,막무가내다 식의 말이 떠돈다.심각한 공주병에 걸렸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그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코믹장면에서 한국 최고의 미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성격이 극단적이라 오해를 부른 것 같아요.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상하 구분없이 따지는 편이죠.윗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을 못하는 ‘못된’ 성격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솔직히 공주병도 있어요.여자가 예뻐 보이면 좋은 것 아니에요?”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해 어릴 적부터 승마·무용 등을 배운 그의 소망은 무엇일까.그의 출연작에 빗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뭘 하겠느냐고 질문했다.

“꼭 1주일만 남자가 되고 싶어요”

“왜요”

“여자와 다르니까 호기심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왜 1주일?”

“다시 태어나도 예쁜 여자가 더 좋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성숙해 있었다.‘하루’를 계기로 자세가 달라졌다고 했다.

“솔직히 예전엔 편하게 찍고 싶었어요.그런데 이젠 정말 고생했구나 하는 작품을 찍고 싶어요.‘러브’ 이후 멜로영화를 거부한 것도 그런 이유죠.‘하루’에는 휴머니즘이 담겨있거든요.”

끝에 가선 영화자랑을 잊지 않는 총명한 아가씨다.액션물이나 스릴러물이 다음에 도전할 산이라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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