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압록·두만강 대탐사] 8. 강은 대륙을 열고 있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8. 중국학자들 백두산 폭발 우려

우리 탐사단이 압록강 상류를 따라 올라가다 린장(臨江)에 이르러 거대한 백두산 화산체와 만나게 된 것은 답사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그 날은 추석이기도 해서 압록강에 드리워진 보름달은 고향의 그리움을 한껏 부풀렸다.

하류 둥강(東港)에서 린장에 이르는 압록강은 대체로 북동에서 남서의 랴오둥(遼東)방향이지만 린장에서 창바이(長白)에 이르는 압록 유로는 갑자기 서북에서 동남 또는 동에서 서방향으로 크게 바뀐다. 이는 망천아(望天鵝) 화산에서 흘러내린 용암때문이다.

약 1천만년 전 망천아 화산체가 형성되기 전에는 압록강이 무송(撫松)쪽으로 뻗었으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지역에 이르면 인류 역사이전의 상상키 어려운 화산폭발이 끊임없이 산맥을 만들어 내고 강의 진로를 바꾸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린장에서 5도구하를 지나는 언덕에서 망천아 화산체의 자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린장에서 창바이에 이르는 압록강 중류는 강원도 영월의 동강보다 더 뛰어난 곡류(曲流)하천으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관을 이루었다.원시 그대로 살아있는 압록강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15도구 언덕에서는 접시를 뒤집어 놓은 듯한 망천아봉의 순상(楯狀) 화산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여러 차례 백두산 지역을 답사했지만 이처럼 깨끗한 망천아의 모습을 관망하기는 처음이었다.내심 복 받은 여정이라 생각했다.

지질학적으로 백두산은 평탄한 현무암 대지와 방패모양의 순상화산체 상에 높이 2천7백50m의 중심화산추(中心火山錐)로 되어있다.정상에는 몇 개의 분화구가 함몰된 칼데라호인 천지(天池)가 있다.하부의 용암대지와 순상 화산체의 면적은 1만8천3백50㎢에 이른다.

넓은 뜻에서의 백두산 화산체는 약 3천만년 전에 분출이 시작된 백두산 서북부의 용강(龍剛) 화산체와 약 1천만년 전에 분출이 시작된 순상의 망천아 화산체,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남포태산화산군을 포함한다.좁은 뜻에서의 백두산 화산체는 해발 1천7백m의 순상화산 상에 우뚝 솟은 중심화산추를 이르며 화산폭발을 시작한 것은 60만년 전의 일이다.

강 건너 북한의 혜산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었을 뿐 지질학적으로는 창바이와 하나의 고을이다.답사 8일째 되던 날 백두산에 올랐다.

여러번 백두산을 찾았지만 남쪽 능선 임도(林道)를 따라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감개무량했다.19도구하의 임도를 따라 올라 23도구하와 맞닿는 곳에서 입산 등록을 마치고 백두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압록강의 발원지는 정상 가까이에 있다.상류는 거의 다 협곡을 이루고 있으며 그 깊이는 2백∼3백m에 달한다.계곡을 메운 화산회층(火山灰層)이 심한 침식(下方侵蝕)을 받아 깊이 50m에 달하는 본래의 협곡 바닥까지 깎이어 천군바위의 기암절경을 이루었다.

이러한 부석(浮石)으로 된 바위숲은 백두산의 곳곳에서 발견된다.이들은 백두산 화산폭발의 규모와 횟수를 밝히는 좋은 증거가 된다.

백두산에 오르면 어디서나 천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천지 북쪽 달문에서 빠져나온 물은 승사하(乘梭河)를 거쳐 장백폭포에 이른다.높이 68m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장백폭포는 일대장관을 이룬다.송화(松花)강의 젖줄이다.

이 곳은 빙식에 의하여 만들어진 권곡(圈谷·kar)과 깊이 파인 U자 모양의 협곡이다.이렇게 백두산 남·북 양사면의 경관은 현저하게 다르다.

백두산 일대의 화산활동의 역사는 크게 5단계로 나뉜다.제1단계는 2천9백40만년 전 용강화산군이 분출한 사방정자(四方頂子期)기다.사방정자는 이 때 형성된 지명.제2단계는 2천3백만년 전부터 시작하여 1천3백57만 년 전에 이르는 시기로 백두산 동북부에 현무암의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다.

오랜 기간 휴식기를 거친 뒤 제3단계는 4백43만년 전 망천아의 활동기에 들어와 다시 시작됐다.

제4단계란 백두산 화산활동은 용암대지(熔岩坮地)를 형성한 후 8∼9만년 전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백두산 중심화산추(中心火山錐 )를 형성해왔다.이 시기에 천지 동쪽 두만강 상류 유역에 분포하는 쌍목봉·무두봉·대연지봉·소연지봉·대각봉 등의 기생화산도 형성됐다.

백두는 우리의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폭발하였다.화산회층에서 채취한 탄화목에 대한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일본의 마찌다(町田,81·83년)는 915∼1334년,러시아의 지자코브(89년)는 1054∼1349년,중국의 유약신(劉若新·98년)은 1215년에 화산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냈다.

역사 기록으로도 1413년,1597년,1668년,1702년,1903년에 화산회와 가스의 분출,그리고 화산회와 비가 섞여 내린 화산우회(火山雨灰)의 흔적이 발견됐다.

천지 가까이에 있는 온천과 가스의 분출은 백두산이 에너지를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1992∼94년 사이에는 천지에서 5km 내에 진앙(震央)을 둔 화산성 미진이 몇차례 발생하였는데 그 진원(震源)의 깊이가 점차 얕아지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이런 탓으로 내가 아는 중국의 화산학자들은 화산폭발을 우려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백두산을 오르다보면 고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다양한 식생(植生)을 보인다.그리고 여기에는 3백여 종의 척추동물,1백73종의 조류,1천5백여종의 곤충이 서식한다.이러한 원시적인 자연경관과 생태계의 특성 때문에 유네스코는 1980년에 세계자연보호지로 지정하였다.

두만강의 발원지는 일반적으로 원지(圓池)인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학자들 사이에 의견을 달리한다.서두수(西頭水)의 최상류인 마천령산맥과 함경산맥이 맞닿는 곳이 발원지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통례적으로 백두의 가장 높은 곳에서 발원한다고 하면 백두산 가까이에 있는 대연지봉(2360m)이 발원지이다.바로 그 산릉 넘어가 압록강의 발원지이다.

두만강은 무산철산의 양안에 있는 제지·펄프공장 등에 의하여 심하게 오염되었으나 원시적인 자연경관은 잘 보존되었다.훈춘(琿春)을 중심으로 한 두만강 하류지역은 지난 91년 10월 24일 UN의 국제개발계획 기구에서 중점개발지구로 지정했고 중국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식해 ‘금삼각중심(金三角中心)’이라 부르며 지역개발에 속도를 가하고 있다.

징신(敬信)·팡촨(防川) 지역은 쐐기모양으로 러시아와 북한 사이에 끼어있다.그 끝머리에 있는 토자비(土字碑)는 두만강 하구에서 17km 내륙 쪽에 있다.하구에서 50km 내륙의 경신·방천 지역에는 간빙기(間氷期)때의 해수면과 관련된 사구,석호,저습지와 하안단구가 잘 발달되어 있다.러시아의 포시에트만과 북한의 조산만 일원의 지형과 연속되어 있어 지형에는 국경이 없음을 잘 말해준다.

40억년이란 지구의 역사 속에서 백두산과 압록.두만강의 나이는 불과 수백만년 안짝으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하지만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어찌 지구의 나이를 말할 수 있을까. 대자연의 위대함에 거듭 감동하며 내달린 여정이었다.

원종관 <강원대 교수.지질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