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찾은 홍콩 영화계 톱스타 장만위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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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막바지로 치닫던 13일 부산을 찾은 장만위(張曼玉.34)는 폐막을 아쉬워하는 영화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왕자웨이(王家衛)감독의 폐막작 '화양연화' (21일 개봉)에서 주연을 맡은 장만위가 이날 한국을 첫 방문해 남포동 PIFF광장에서 관객들로부터 받은 환호는 영화제 손님 중 가장 뜨거웠다.

바쁜 일정을 쪼갠 그를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스타인지라 건장한 경호원들이 늘 동행했고 인터뷰 역시 지정된 장소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속에서 가냘퍼 보이지만 또렷한 눈망울이 인상적인 장만위는 시종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어린 시절을 영국에서 보낸터라 영어가 유창했다.

"이 작품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영화죠. 주인공이 정말 여자란 느낌이 들었어요. 5년 전이었다 해도 이런 역할은 못했을 겁니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추억같은 사랑을 그린 '화양연화' 는 배우자의 외도라는 같은 고민을 가진 두 남녀가 마음만 있을 뿐 마음 가는 대로 따르지 못해 기회를 놓쳐버린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왕자웨이 감독의 성숙해진 감성과 세밀함이 돋보이는 이 작품으로 량차오웨이(梁朝偉)는 올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장만위가 이 영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내가 여성으로 많이 성숙해졌고 지금 느낄 수 있는 감성과 너무 일치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실제 92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완령옥' 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는 이듬해 "쉬고 싶다" 며 은퇴를 선언해 3년간 공백기를 가졌으며 한때 홍콩의 한 청년 사업가와 결혼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첨밀밀' 등으로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98년에는 프랑스 영화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결혼했다.그 과정에서 얻은 삶의 감성이 영화와 맞아떨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영화촬영이 너무 힘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완성된 시나리오를 갖고 시작한 영화가 아니라 주인공을 캐스팅한 후 인물의 성격을 찾아나갔기 때문이다.왕감독의 고집이었다.

촬영기간이 무려 15개월이나 걸리자 장만위는 "항상 리허설만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고 말했다.

방콕에 갔을 때는 3주간 단 이틀만 촬영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그래서 왕감독과는 "이제 끝장이다" 는 마음까지 먹었지만 영화를 완성한 후 필름을 보면서 이내 그 마음은 식어버렸다.

"촬영할 때 너무 힘들게 했지만 정작 작품을 보면 마음이 달라져요. 왕감독은 끝내 돌아오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라는 장만위의 대답에는 감독에 대한 애증이 교차한다.

수차례 한국을 찾는다고 해놓고는 왜 이제야 왔느냐는 질문에는 "일정이 문제였다" 며 "실제로 한국에 오기 전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어 두렵기까지 했다" 고 털어놓았다.

성격이 복잡한 편이며 분위기엔 무척 약한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장만위는 "이젠 영화가 직업으로 생각되기보다는 내가 영화의 일부가 되어 삶의 특별한 의미를 캐내고 있다" 라며 한층 성숙한 자세를 보였다.

장만위는 당분간 '화양연화' 홍보를 위해 유럽.대만 등을 방문할 예정이며 다음 작품은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인생이란 게 멀리 보지 못하는 것이라 먼 훗날까지 생각을 안한다" 는 그는 요즘 유난히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그림엔 문외한이지만 '색깔' 에 푹 빠져 지내거든요. "

부산〓신용호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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