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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도 개정 논의하는데 당론 바꾸지 못할 이유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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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호 06면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고 이용삼(민주당) 의원 영결식에 참석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분향소를 응시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40여 분을 기다린 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박형민 대표실 보좌역은 “다음 달 있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위한 준비 회의가 예상 외로 길어졌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세종시 당론 변경 밀어붙이는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회의 후에도 정 대표의 일정은 분(分)단위로 이어졌다. 아이티 지진구조대와 함께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강용석 의원이 위성전화를 걸어왔다. 당 청년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 의원은 “청년위원들과 함께 지진 복구 현장에 다녀오라”는 정 대표의 지시로 아이티에 급파됐다. 정 대표는 “강 의원, 고생 많아. …수고하고 몸조심해요”라고 격려했다. 그러곤 외부 방문객과의 면담에 이어 고 이용삼(민주당) 의원 영결식 참석을 위해 국회로 이동했다.

중앙SUNDAY와의 인터뷰는 ‘릴레이식’으로 이뤄졌다. 당 대표 집무실에서 10여 분, 그리고 당에서 국회로 이동하는 자동차 안, 다시 국회에서 김포 공항으로 달리는 자동차에 동승한 이동식 인터뷰였다. 마지막은 공항 귀빈실에서 20분가량 이뤄졌다. 그는 국정보고대회 참석을 위해 제주도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지난 22일 오전의 일이다.

하루 두번 밖에서 샤워
-대표(지난해 9월 8일 취임)를 맡은 지 넉 달이 넘었습니다.
“지난해 연말에 남아공에서 FIFA(국제축구연맹) 집행위원들을 만났어요. ‘얼마나 바쁘냐’고 묻기에 하루 세 끼를 다 밖에서 먹는 것은 물론이고 두 번의 샤워도 밖에서 한다고 대답했어요.”

-밖에서 샤워를 두 번 한다고요?
“ 출근시간에 길이 막히는 걸 피하기 위해 아침 6시30분에 집을 나섭니다. 곧장 국회 의원회관 사우나로 직행해 샤워를 하고 저녁엔 식사 약속이나 행사장에 가기 전에 또 한번 샤워를 해요. 깨끗하게 하고 가야 하니까요.”

-세종시 신안을 새로운 당론으로 채택하는 문제를 놓고 당내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수정안 확정을 위한 토론은 토론이 아니다. 투표일 뿐”이라며 토론에 참가할 수 없다는 입장 이고요. 무슨 복안이라도 있습니까.
“시간이 필요하겠죠. 어떤 의원이 부부싸움에 비유하는 걸 들었는데, 그런 비유가 적절한지 조심스럽습니다만 어쨌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아닐까요.
“박 전 대표도 사실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가 필요하다, 좋다기보다 (한나라당이) 약속한 거니까 지켜야 한다는 입장 아닙니까. 그 면에서 야당 하고는 관점이 다른 거죠. 야당은 세종시법은 지방분권을 위해 좋은 것이란 입장이니까 박 전 대표와 야당의 의견은 차이가 있어요.(박 전 대표 쪽과는) 진단은 같은데 처방이 다른 거니까 의견수렴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박 전 대표가 ‘당론이 바뀌어도 입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한 데 대해 친이계 쪽에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당원으로서 문제 있는 발언이라고요.
“본인의 입장이 워낙 강하니까… 그런 강한 표현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꾸 대화를 하자는 것도 그렇고…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박 전 대표는 당론 변경을 위한 토론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인데 이런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박 전 대표가 대표로 있던 시기에 원안을 당론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는 것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토론 자체를 거부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국회에선 수많은 법안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고 나라의 근본인 헌법도 개정 논의가 있잖아요. 당론 결정이 무겁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바꾸지 못하는 불변의 것은 아니지요.”

-당론을 변경하려면 재적의원(169명) 3분의 2(113명)가 찬성해야 합니다. 친박계(50~60명)가 불참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당론을 정하지 말고 자유투표를 하거나 무기명 비밀투표에 부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 전 대표도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점을 알지만 충청도민에 대한 약속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일부 부처 이전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대못’이라고 말했듯이 세종시 문제가 대못이란 데는 (박 전 대표 쪽도) 인식이 같습니다. 다만 대못을 뽑는 과정에서 내복약을 먹을 거냐, 수술을 할 거냐 하는 처방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면 이런 정도의 의견 차이는 극복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론으로 정하는 문제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논의
해봐야 하겠지만 당에 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론은 정해야 하겠지요.”

한나라당에선 요즘 ‘미생지신(尾生之信)’ 논쟁이 한창이다. 정 대표가 ‘미생지신의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게 발단이 됐다. 춘추시대 노나라에 미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렸으나 소나기가 내려 물이 밀려와도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가 교각을 끌어안고 죽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박 전 대표는 “미생은 죽었으나 귀감이 됐고 그 애인은 평생 괴로움 속에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정 대표가 ‘미생지신’이란 고사성어를 인용한 게 박 전 대표를 자극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미생지신 발언은 어떻게 나온 겁니까.
“제가 일주일에 회의를 세 번 주재하는데 그때마다 당에서 실무자들이 (참고 자료를) 적어줘요.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런 게 필요할 때 제가 참고해서 1분가량 얘기하고 또 제가 준비해온 얘기를 하곤 합니다. 그건 그분(실무자)들이 써준 거예요.”

-그래도 인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 아닙니까.
“(정 대표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곤 기자를 향해) 융통성이 없다고 지적했다기보다 약속도 중요하지만 목숨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려 한 거예요. 절대 어느 한쪽을 강조한 게 아니에요. 그 말을 할 때도 미생을 어리석다고 할 수도 있지만 좋은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양쪽으로 해석하는 게 다 가능하다는 얘기를 분명히 했어요.”

내가 유약? 당직 개편 검토 중
그의 카니발 승용차엔 신문과 필기구, 털목도리와 장갑 등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었다. 차에 올라탄 정 대표는 “좀 어지럽죠”라며 물건들을 한 켠으로 주섬주섬 치웠다.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 기자는 박 전 대표와의 인연을 화제로 꺼냈다. 두 사람은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정 대표(59)가 박 전 대표(58)보다 한 살 많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표는 한국미래연합을, 정 대표는 국민통합21을 창당한 적이 있다.

-박 전 대표와는 인연이 깊으시죠.
“박 전 대표가 (정치에 들어오기) 전에 테니스를 좋아해 같이 치기도 했죠. ”

-같이 테니스 치던 박 전 대표와 오늘의 박 전 대표는 어떻게 다른가요.
“국민 지지가 높은 분이고 자신의 주장이 분명하고 강한 분이죠.…잘못 전달될 수도 있어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2002년 대선 전 두 분이 연대를 모색했던 적이 있죠.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후 5월께 만난 적이 있었요. 저더러 당을 같이하자고 제의했어요. 그런데 저는 10년을 준비해온 월드컵 행사를 한 달 앞두고 있던 때였어요. 정당을 새로 하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또 월드컵은 국민통합 행사인데 특정 정당에 가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지요.”

-그게 같이하지 못한 이유의 전부인가요.
“딴 이유도 있지만 지나간 얘기를 지금 거론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

-정 대표가 국민한테 유약한 이미지로 비쳐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무총장 교체 등 당직 개편을 추진하다 잡음이 생기니까 주춤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약하다? (그는 한참을 머뭇댔다)… 새 대변인 임명 등 개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 중입니다.”

-친박계 쪽에서 조기 전당대회론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조기 전대를 들고
나오는 게 불쾌하지 않습니까.
“모든 판단은 국민이 하는 거죠. 전당대회가 필요하냐 아니냐, 국민이 필요하다고 하면 의견을 따를 수 있죠.”

-조기 전대론을 들고 나오는 건 정 대표에게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란 해석이 있습니
다.
“정치니까 흔들고 압력을 넣고 하는 게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같은 당은 미워하고 다른 당은 덜 미워하고, 김정일 위원장 만나서 사진 찍는 건 좋아하는 풍토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갑자기 정 대표의 톤이 높아졌다. 그는 ‘이건 꼭 써주세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홍준표 의원이 의원들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1위로 나왔다며 전당대회 하자고 하는 건 금세 이해가 돼요. 그런데 경선에 나오지 않을 분들이 ‘전당대회 하자’ ‘지도부가 잘 못한다’고 하는데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죠. 누가 (대표) 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전당대회 하자고 해야지 이렇게 하는 건 당에 도움이 안 돼요.”

-만약 조기 전대로 결론이 난다면 출마할 겁니까.
“나오는 거 고려해야죠.”

?집사람, 요즘은 정치 기도 많이 해
정 대표는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8남1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중앙고·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 석사를,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3대 총선 때 울산동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래 여기서만 내리 5선을 기록했다. 18대 총선에선 지역구를 서울(동작을)로 옮겨 당선됐다. 현대중공업의 대주주로 현재는 고문을 맡고 있다.

-정치를 하거나 큰 사업을 하는 분 중엔 역술가나 점성가를 찾아 신년운수를 보곤 하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점은 안 보십니까.
“제 생일이 10월 17일로 돼 있는데 집안 어른들은 진짜 생일이 음력 10월 27일이라고도 합니다. 할머니 돌아가신 다음날 태어났다고요. 옛날엔 그런 (날짜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점을 치려면 어느 생일로 해야 하나, 그것도 문제고요. 허허. 점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부인 김영명 여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죠. 그 영향도 있나요.
“집사람이 권사예요. 원래 처가가 독실한 기독교 가족이에요. 김해의 성결교회를 세우기도 했다고 해요.”

-김 여사가 매일 새벽기도를 다니는 걸로 알려졌는데요.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고 집에서 성경공부도 열심히 해요. 전 아침에 신문 보기 바쁜데 집사람은 성경에 지혜가 담겨 있으니 신문 읽기 전에 성경을 읽으라고 권하곤 하죠. 축구시합 있을 땐 시합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요. 요즘엔 정치에 대해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요.”

-정치를 하면서 세운 원칙이나 좌우명이 있습니까.
“미국의 경우 전당대회를 3일 동안 하는데 인포메이션(정보)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재미있으니까 대의원들이 자기 돈 내서 호텔비·교통비 내고 와요. (우리처럼) 동원할 필요가 없죠. 우린 하루, 그것도 몇 시간 짧게 하는데도 재미가 없어요. 정치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뭐가 가장 큰 문제인가요.
“사당화예요. 당협위원장이 누굴 찍으라고 하면 당원들이 따르죠.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무능하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사당화예요. 미국의 경우 현역 의원인 경우 당협위원장을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어요. 힘이 센 의원이 당협위원장까지 겸하면 당원이나 대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쪽으로 개혁을 추진하실 건가요.
“바로 추진하는 건 쉽지 않지만 그런 관점에서 (개혁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죠.”
이때 ‘곧 비행기가 출발한다’며 비서들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라고 채근했다. 정 대표는 제주행 비행기로 향하면서 “월드컵 유치를 위해 25일 스위스 취리히로 출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FIFA 회장이 초청하는 만찬에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뒤 이달 말 귀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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