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까지 불러오는 망막색소변성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0호 15면

얼마 전 방송에서 틴틴파이브 출신의 개그맨 이동우씨가 망막색소변성증이란 병을 앓고 있다고 밝힌 것을 봤다. 현재 거의 시력을 잃어서 이동할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유전자 이상으로 망막의 색소상피에 변성이 생기는 질환이다. 반 수 정도는 유전에 의하지만 나머지는 유전과 무관하게 후천적으로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 눈의 뒤쪽에 있는 망막은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하는 곳이다. 망막의 바깥 층을 색소상피라고 부르며, 이는 사물을 식별하는 두 종류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망막의 주변부에 주로 분포해 있으면서 사물의 주변부의 모양을 인식하며 특히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식별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막대같이 생긴 간상세포다. 다른 하나는 주로 망막의 중심부인 황반이란 곳에 분포하면서 색깔을 구별하고 주로 환한 곳에서 물체를 정밀하게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원추세포다.

원장원의 알기 쉬운 의학 이야기

망막색소변성증은 초기에는 간상세포의 결함이 주로 나타나서 밤눈이 어두워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변화는 유아기나 소아기에 이미 시작되지만 잘 모르고 있다가 나이가 들어서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상적으로 사람이 보는 시야는 180도인데, 이 각도가 50도 정도로 좁아져야 시야가 좁아진 것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도 군대에서 야간 사격을 할 때 목표물이 전혀 보이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처럼 그저 밤눈이 어두운 체질인가 하고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원추세포의 결함도 나타나기 때문에 물체의 모양이나 윤곽이 찌그러져 보이고 책을 읽기도 어렵게 된다. 결국에는 실명을 하기도 한다. 30~40대에 실명할 수도 있고, 50~60대에도 비교적 시력을 유지하는 사람까지 경과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망막색소변성증은 현재로서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현재 연구 중인 치료법으로는 인공망막, 줄기세포 치료, 그리고 유전자 치료가 있다.

인공망막은 마이크로 칩을 망막에 이식해 퇴화된 간상세포와 추상세포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그 효과가 빛을 감지하고 움직임을 느끼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더 좋은 인공망막이 개발될 것이다. 줄기세포 치료는 줄기세포를 망막색소상피세포로 분화·유도해 주입하는 것으로 동물실험에서 질환의 초기에 사용하면 더 이상 악화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은 진행되지 않았다.

유전자 치료는 결함이 있는 망막색소상피 유전자를 대신할 정상 유전자를 아데노바이러스란 바이러스의 유전자에 집어넣어 망막색소상피에만 작용하도록 특수 장치를 붙인 뒤 환자에 주입하는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망막의 색소상피를 감염시키면서 손상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물론 바이러스가 몸 안에서 증식하지 않도록 바이러스 유전자를 사전에 조작한다.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서 ‘레버 선천성 흑암시’라는 유전질환에 의해 맹인이 된 9세 소녀가 유전자 치료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장기적인 안정성이나 효과,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유전질환에 의한 실명도 치료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크다. 이동우씨의 인터뷰를 보면서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부분은 시력을 잃은 그가 “요즘 굉장히 행복하다”고 고백한 대목이었다. 눈을 뜨고 있지만 진실을 왜곡되게 보는 사람, 진실을 보고도 진실인지를 모르는 ‘눈 뜬 장님’보다 오히려 마음의 눈을 뜬 이동우씨가 더 정상인 것으로 느껴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