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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서는 북·미] 북·미 공동선언 한반도 파장…전문가 공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북한과 미국은 지난 12일 공동성명을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선언했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동북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김영희(金永熙)대기자의 사회로 공노명(孔魯明)전 외무장관.이기택(李基鐸)연세대 명예교수의 긴급 좌담을 마련했다. 이들의 분석을 통해 북.미 공동선언을 평가하고 향후 남북관계를 전망해 본다.

<참석자들>

공노명 전 외무장관

이기택 연세대 명예교수

사회 : 김영희 본사 대기자

▶金=6.15 남북 공동선언에 이어 한반도에 평화.화해의 시대를 여는 북.미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이번 북.미 성명이 갑작스럽게 나온 것인지, 6.15선언 이후 예정된 수순을 밟은 것인지의 배경부터 검토해 보자.

▶孔=갑작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예고돼 있었다. 그동안 북.미간에는 '페리 프로세스' 에 따라 김계관 외무성 부상-찰스 카트먼 한반도평화회담 특사간에 꾸준한 물밑 작업이 있었다.

이번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에 앞서 사전 정지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북한이 미국 대선에 앞서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李=북한은 남한에 돈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제2 금융위기가 닥치면 남한은 적어도 7년간 그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당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해제시켜야 한다. 북.미 합의는 이런 시각에서 봐야 한다. 북한은 경제대국만 이룩하면 명실공히 '강성대국' 을 이루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金=북.미는 이번 성명에서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기 위한 4자회담 등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평화협정은 4자회담 틀 안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는가.

▶孔=북한은 수십년간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주장해 왔다. 이번 제안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번 합의는 4자회담을 제의해 온 미국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이 그리 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남한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李=북한은 설사 4자회담 틀을 갖추더라도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통해 평화협정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북측은 제주 국방회담에서도 남측과 군사회담은 하지 않으려 했다.

이번 성명에서 "두 나라 사이의 쌍무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는 대목을 눈여겨 봐야 한다. 이것은 평화협정 문제를 북.미회담에서 해결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金=북.미 성명은 6.15 남북 공동선언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평화체계, 긴장완화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미국과는 평화협정을 논의하고 남한과는 통일방안을 앞세워 경제문제를 협의하겠다는 의도인가.

▶孔=북한은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원한다. 그러나 미국이 반대할 것이다. 미국이 한국을 무시하고 북한과 일방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경우 한.미간에는 숱한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다. 비록 3만7천명의 주한미군이 있지만 미국도 한반도를 지키는 65만명의 한국군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李=북한이 평화체제 구축은 미국과 해결하고 남한과는 통일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을 앞으로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북.미간 합의는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돌적인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백악관까지 쳐들어간 것이다.

▶金=일각에서는 이번 북.미간 합의로 6.15선언 이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다시 미국에 빼앗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李=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 발표 때나 남북 정상회담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하지 않고 미국에 일방적인 통보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문제를 민족주의 차원에서 해결하려 했던 것 같다. 미국은 자연히 소외감을 가지게 됐다.

남북 정상회담 때에도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북한과 얘기할 사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거론됐기 때문에 미국이 불쾌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거꾸로 미국이 우리와 사전협의없이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김대중 정부가 그동안 미국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데 대한 불쾌감의 표시라고 본다.

▶孔=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북문제는 남북한의 시각이 있고 동북아 차원의 시각이 있다. 넓은 차원에서 보면 대북문제는 일본의 문제이자 미국의 문제다.

그래서 한.미.일 3국이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대북문제에 대처해 나갔던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대북문제의 주도권을 놓고 우리 정부와 미국이 마치 다투는 것처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金=북.미간에 경제사절단을 교환하고 관계개선이 이루어질 경우 이에 발맞춰 북.일관계도 개선될 소지가 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경협자금이 북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孔=한가지 유념할 것이 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변하고 군사적으로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보장이 이뤄지기 전에 일본의 경협자금이 북한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이같은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 자금이 들어가면 한반도의 안보와 남북한 교류.협력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한.미.일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李=金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에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건설을 도와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현재 북한 군부가 전기.도로.항만 등 SOC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SOC 건설 지원은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 그래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이나 한반도 군축이 이뤄지기 전에 일본의 경협자금이 들어가지 않도록 일본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金=북.미 성명에는 6.15선언을 지지한다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孔=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성명에 "북남 최고위급 상봉에 의해 조선반도의 환경이 변화됐다" 는 등 6.15선언을 지칭하는 문구가 있다.

▶李=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이 6.15선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본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남북관계를 개선한 것이다.

▶金=연내에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할 경우 북.미간에 어떤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나.

▶李=클린턴의 방북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휴전선에 팽팽히 감도는 북한의 위협을 우리가 전적으로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유지돼온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기본틀이 깨지는 것이다. 따라서 북.미간에 미 7함대의 원산항 기항(寄港)등 충격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

▶孔=그 정도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북한의 테러리스트 명단 해제와 연락대표부 설치 등의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이는 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를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金=북.미관계의 큰 진전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孔=총체적으로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본격화한 남북한 화해.협력을 보다 튼튼히 하고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李=북.미관계가 개선되면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3조에 언급된 '북한의 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 정신이 사라질까 우려된다.

정리=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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