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서울·파리의 홀짝운행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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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파리시가 차량 운행 2부제를 처음 실시한 것은 1997년 10월 1일이었다.

따가운 가을 햇살 속에 바람 한점 없는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면서 대기 중 오존농도가 3단계 경보수준(㎥당 3백60㎍)을 넘어서자 이날 하루 동안 파리시 일원에 자동차 홀짝 운행제가 실시됐다.

대기오염방지법에 따라 실시되는 파리의 2부제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기간인 오는 20, 21일 교통소통 대책으로 실시되는 서울의 2부제와 출발점 자체가 다르다. 그만큼 시행방법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2부제가 실시되는 동안 파리 시내를 운행하는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일절 요금을 받지 않는다. 주택가의 모든 주차공간은 무료개방된다.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서지만 자동차 운행을 제한하는 데 따른 시민불편을 보상한다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서울에서는 지하철과 버스가 각각 1시간과 30분씩 연장운행되는 것이 시민에 대한 배려의 전부다.

서울의 경우 탑승객 10인 이하의 비사업용 차량이 2부제 적용대상이지만 운전자를 포함해 승객이 세명 이상이면 파리에서는 2부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차량 등록번호와 시행일을 기준으로 따지는 홀짝 운행제 적용기준이 정반대라는 점은 가장 큰 차이다.

파리의 경우 2부제 실시일이 홀수일이면 등록번호가 홀수인 차량이 운행할 수 있고, 짝수일이면 짝수차량이 운행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홀수일에는 홀수차량이 운행할 수 없고, 짝수일에는 짝수차량이 운행할 수 없다.

'할 수 있다' '해도 좋다' 는 자유.개방의 문화와 '할 수 없다' '하면 안된다' 는 억압.폐쇄의 문화적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음주단속 방법을 보면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길을 막아놓고 모든 운전자에게 측정기를 물리는 단속방식은 모든 운전자는 일단 음주운전자고 범법자라는 '부정(否定)의 가정' 에서 출발한다.

반면 운전질서를 안지키거나 법규를 위반하는 등 음주혐의가 있는 운전자에 한해 단속하는 방식은 가정 자체가 정반대다. '긍정의 가정' 이 출발점이다.

포도주를 곁들이지 않은 식사는 식사가 아니라고 믿는 프랑스인들이지만 음주 교통사고율은 우리보다 낮다.

서울과 파리의 홀짝 운행제 적용기준의 차이가 단순한 문화의 차이라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따질 일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이냐는 점에서는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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