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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석의 아이티 구호활동기] ②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이티 대지진 참사현장에 한국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아이티 지원팀도 그 중 하나다. 당 청년위원장인 강용석 의원을 포함한 6명의 지원팀은 22일(현지시각)부터 포르토프랭스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한다. 17일 한국에서 출발한 지 무려 5일 만이다. 강 의원이 아이티 현지에서 생생한 구호활동기를 조인스닷컴에 보내왔다. 다음은 강 의원의 글 전문.

<강용석 의원의 글 전문>

포르토프랭스

아이티 국경지역은 아이티로 향하는 구호물품 차량, 장비를 실은 차량들과 아이티에서 도미니카로 넘어 오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한국 사람은 여권조차 보여줄 필요 없이 프리패스라더니 정말 차를 세우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국경을 넘어 아이티로 접어들자 한쪽에선 구호물품을 나눠주고 다른 쪽에선 배급받은 구호물품으로 장사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도미니카와 아이티는 거의 미국과 멕시코 비슷한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도로의 상태나 주변 환경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핸드폰도 안 터져요. 아이티와 도미니카는 한 눈에도 차이가 나는 것이 도미니카는 3/4의 국민이 물라토인데 반해 아이티는 90%가 흑인이랍니다. 사람들이 길거리에 우루루 나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척 불편합니다. 아이티의 치안이 워낙 좋지 않다고 해서 무척 긴장했는데 다행히 국경에서 포르토프랭스까지의 육로는 미군들이 자주 들락거려서 그런지 별로 위험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아이티 국경을 넘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한 눈에도 여기저기 무너지고 쓰러진 현장이 보였는데 사람들이 길거리에 무척 많이 나와 있는 모습이 특이합니다.목적지를 못 찾고 헤매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는 곳을 보니 구호품을 나눠주고 있네요. 아이티의 행정력이 완전히 무력화되어 국제구호단체에서 수송해온 물품을 분배하는 곳에는 미군 아니면 유엔 평화유지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에는 미군의 수송기로 보이는 비행기가 계속 떠다니는 것을 보아 민항은 폐쇄되었지만 군용기는 다니나 봅니다. 포르토프랭스는 원래 항구인데 접안 시설이 모두 파괴되어 미국은 항공모함을 포르토프랭스 앞에 띄워 놓고 수송기로 물자를 나른다고 한다더니 그래서 저렇게 비행기가 많이 다니는군요.

이런 몇 가지 감상을 떠올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 목적지는 소방구조대가 체류하고 있는 이파워(한국인 베이스캠프)의 발전소 부지인데 시내에 들어와서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아이티는 '크레올'이라는 현지어를 사용하는 관계로 운전사들이 길을 못 물어봐요. 핸드폰으로 통화는 안되고 문자만 겨우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도라 대책도 없습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지키는 공장 단지 안으로 들어가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다행히 한국 분을 만났습니다. 친절하게도 그 분이 저희를 이파워 발전소 부지까지 에스코트 해주시더군요.

발전소 부지는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는 철문으로 되어 있는데 신원확인을 해야만 들여보내줍니다. 신원확인은 어떻게 하냐구요. 얼굴만 보면 알아요. 그 안에는 한국 분들만 있기 때문에, 문 앞에서 빵빵 누르면 문이 조금 열리면서 차 안의 얼굴을 쓱 보고 열어 줄지 말지 결정하는거죠. 치안이 확실합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저희보다 몇시간 늦게 출발한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분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50인승 버스 한대로 주저 없이 달려 왔으니 시간 낭비가 적었던 게죠.

119구조대

도착하자마자 강철수 소방구조대장으로부터 상황설명을 들었습니다. 전부 35명의 구조대원이 17일부터 인명구조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건 발생후 10일이 경과하여 더 이상 생존자는 없을 것으로 보고 31명은 22일 오전에 철수한다는 것입니다. 성과는 생존자 구조는 하지 못했지만 유엔의 요청으로 몬타나 호텔에서 사망한 유엔군의 사체 1구를 수색해 냈다고 하는군요.

소방구조대 얘기를 여기저기서 들은 바에 따라 종합해서 하자면 지진이 나자 구조대를 가장 많이 파견한 곳은 미국, 프랑스, 그 다음이 대한민국이랍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우리보다 몇배의 구조대를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구호활동을 펼치지 않아 현장에서 불만의 소리가 많았고 오히려 인원에서 적은 한국구조대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고 합니다.

이런 성과를 거둔 데는 한국구조대가 내시경이나 초음파탐지기 등의 다른 나라 구조대가 갖추지 못한 첨단장비를 이용하여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있는 생존자나 사체를 신속정확하게 파악해 냈고 특히나 함께 온 탐지구조견의 능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무척 탁월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한국의 탐지구조견들이 예의도 바라서 공항에서 프랑스 개들은 아무데서나 컹컹 짖고 오줌도 싸고 하는데 한국의 개들은 주인 옆에서 얌전히 잘 있는다고 많은 나라 구조대로부터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긴 하루가 지났습니다. 내일은 잔류하는 소방구조대원들과 방역작업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인명구조에서 방역과 재건으로 구호의 방향이 바뀔 시점이 되었구요. 다행히 언론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전염병이 창궐할 우려는 적어 보였습니다. 사망자들이 전염병으로 죽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매사는 불여튼튼! 우선 의료진이 활동할 지역부터 방역을 시작해서 주요 도로들로 작업을 확대할 계획이랍니다. 방역작업 틈틈이 포르토프랭스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센트럴 지역에도 들러 피해상황을 확인해 볼까 합니다.

이곳에서는 언론이 피해상황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불만이었습니다. CNN이 폭스에 밀리다 보니 이번 일을 계기로 뒤집어 보려고 30명이 넘는 기자를 파견하여 연일 자극적인 영상과 추측기사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죠. 국내 언론들이야 여기서도 CNN을 따라가다 보니 받아쓰게 되는 것이구요. 미국 메사추세츠주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자극적인 기사가 많이 나올뻔 했습니다. 다행히 이곳 교민 분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텐트에서 자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모기가 워낙 많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이 곳은 발전기를 갖추고 있어 전기도 되는 데다가 잠이 잘 오지 않아 글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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