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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미국 - EU '사상 최대 맞제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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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항공기 제조업체에 대한 보조금을 둘러싸고 세계무역기구(WTO)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분쟁에 들어갔다.

미국은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독일.영국.스페인 등 EU 국가가 최소 150억달러 규모의 불법 보조금을 에어버스에 제공했다며 WTO에 제소했다. 미국은 EU의 보조금 지급으로 미국의 보잉사가 세계 최대의 민간 항공기 생산업체 자리를 에어버스에 내줬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또 1992년 유럽과 맺은 항공보조금 양자간 협정을 폐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협정은 그동안 EU 국가가 새 항공기 개발비용의 3분의 1까지 지원하는 것을 허용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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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EU도 즉각 맞제소로 대응했다. EU는 보잉이 92년부터 연구.개발(R&D) 지원금 형태로 미국 정부로부터 230억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EU는 또 워싱턴주가 보잉의 새 비행기인 '7E7'에 대해 30억달러 규모의 세금우대를 해주기로 한 것도 문제 삼았다.

양측 제소로 WTO는 사상 유례 없는 이중판정이 내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WTO는 두 회사 모두 WTO 규정을 위반한 자금지원을 받은 것으로 결론 내리고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역보복을 인정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거대 항공기 제작사의 대리전=2002년까지만 해도 보잉이 세계 최대의 민간 항공기 업체였으나 지난해 에어버스가 시장점유율 54%를 차지하며 보잉을 누르자 항공기 시장을 둘러싼 미국과 EU 간의 갈등이 커졌다.

EU본부 당국자들은 미국의 결정은 정치적인 것이라고 못박았다. 통상협정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비난에 대응하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미국 정부가 무리한 강수를 두었다는 주장이다. 에어버스 모회사인 EADS의 북미지역 담당 대표인 랄프 크로스비는 "미국 정부의 제소가 미국 대선을 한달가량 앞두고 나왔다는 것은 다소 이상한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미국의 제소는 EU의 부당한 지원을 따진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EU의 보조금을 받아 에어버스가 보잉의 '역작'인 7E7 비행기의 경쟁상품을 만드는 것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될까=이번 거대 경제권간의 무역 분쟁을 보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양쪽이 모두 갈 데까지 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럴 경우 분쟁은 무역보복으로 확대되고 두 업체의 매출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두 회사의 수많은 부품 공급업체에도 적지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로버트 졸릭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새로운 보조금을 없애는 협정에 대해 협의할 용의가 있다"며 겉으로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다른 미국 정부 관계자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파스칼 라미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미국의 제소는 보잉의 매출감소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라며 "이것이 미국이 선택한 길이라면 우리는 이러한 도전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에 영향은=이번 항공기 분쟁은 국내 산업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는 이들과 경쟁할 만한 항공기 제조업체가 없고 항공사는 이번 분쟁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선태 건설교통부 국제항공과장은 "이번 분쟁은 항공운임과 관계없고, 국내에는 이들 항공기 제작사와 연관된 비중있는 부품 협력사가 없기 때문에 국내 산업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 바로잡습니다

10월 8일자 E1면 '미국-EU 사상 최대 맞제소' 기사의 그래픽 중 미국 보잉의 본사를 시애틀에서 시카고로 바로잡습니다. 보잉은 2001년 본사를 시애틀에서 시카고로 옮겼으나 상업용 비행기 제조공정의 상당 부문은 아직도 시애틀 지역에 남아있습니다. 보잉이 85년간 본거지로 삼아온 항공우주 산업의 '메카' 시애틀을 떠난 것은 시카고에 유나이티드항공 등 보잉의 주요 고객이 많고, 항공기 제조 기술을 토대로 정보기술(IT) 사업을 강화하는 전략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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