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할 수 있는 것’과 ‘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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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과학의 발전으로 관측 기술이 고도화되고 있지만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생기는 이상기온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정확한 기상 예측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재난 예방 시스템은 과학을 기반으로 한 정확한 예측과 이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경보 체계, 그 경고를 받아들이며 대비하는 사회문화적 체계가 함께 구축될 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선진국은 정확한 기상 관측에 엄청난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선진국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투자가 이뤄지고 있으며 기초과학인 기상학에 대한 지원 규모도 크지 않기 때문에 예보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처럼 기초과학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홀대는 언젠가는 국민 생활 편의에서 반드시 나타나게 돼 있다.

비단 기상 관측 분야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과학자들의 책임 또한 적지 않다. 융합의 시대에 자신의 분야를 떠나 타 분야와 연구 협력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이 충분했는지 스스로를 돌이켜 봐야 한다. 국민의 요구는 갈수록 다양해지는데 이런 현안을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내 기관, 내 실험실만을 고집해서는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연구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상용화 연구를 통해 ‘하는 것’으로 만들어 국민의 생활 속에 적용해야만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

과학기술이 국민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오랜 연구가 필요한 원천기술과 상용화 연구를 함께 진행해 국민 생활과 제품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만 한다.

필자는 요즘 과학계 인사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기술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상호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정부출연연구소를 비롯해 많은 과학자가 고민하고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생각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기술 이전료의 50%를 인센티브로 제공함으로써 연구 결과의 상용화가 과학자에게 부와 명예를 함께 안겨주는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려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스타 과학자가 많이 배출돼야만 동경하고 그 뒤를 따르는 미래 과학자 또한 많아질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개발된 원천기술을 상용화하는 것. 그것은 과학기술인의 소명인 동시에 국민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하며 국부를 창출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격(國格)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한홍택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