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임동원 국정원장 증인 채택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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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임동원(林東源.얼굴)국가정보원장을 반드시 국회 (국정감사)증인으로 불러내도록 하시오. "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12일 정창화(鄭昌和)총무에게 이같이 직접 지시했다. 여권을 공격할 때 되도록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게 李총재의 스타일이기에 당직자들은 '특별주문' 으로 받아들였다.

李총재는 "자기 직무를 유기하고 북한 김용순(金容淳.노동당 비서)의 비서실장 역할을 한 책임을 꼭 물어야 한다" 고 덧붙였다고 한다.

김용순 비서의 서울방문(추석연휴)때 林원장이 공식 파트너로서 공개적으로 나선 데 대해 李총재는 "문제가 많다" 고 지적해 왔다.

한나라당은 " '음지(陰地)' 에 있어야 할 정보기관 최고 책임자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면 간첩을 색출하는 국정원의 존립이유를 흔들 수 있다" 고 비판해 왔다.

林원장을 증언대에 세우려는 것은 "李총재가 김대중 대통령이 짜놓은 남북정책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것" 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그래서 金대통령과 李총재의 남북정책 충돌의 한복판에 林원장이 나올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날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에 대해 두 사람이 미묘한 견해차를 보인데 이어 2라운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에선 林원장을 金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의 설계사로 평가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정원쪽에선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국장도 필요할 때는 공개활동을 한다" 며 "흑색(음지)활동을 할지, 백색(공개)활동을 할지는 정보기관 최고 책임자의 고유 판단" 이라고 李총재의 시각에 반론을 폈다.

또 林원장이 이미 국회 정보위원회에 수시로 출석해 야당 의원의 추궁을 받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측은 "李총재가 金대통령의 민감한 부분을 직접 건드려 감사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 같다" 고 분석했다. 증인 채택은 어림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林원장을 증인으로 부르려 하는 통일외교통상위는 한나라당 의원 11명, 민주당 9명, 자민련.무소속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자민련이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면서 민주당과의 공조 파기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표결로 가면 민주당이 패배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국정원장이 국정감사 증인석에 오르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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