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록-클린턴 회담] 북·미 '사실상' 정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특사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10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만난 것은 양국의 관계개선은 물론 남북관계.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도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번 만남은 양국 역사상 최고위급이다. 1999년 5월 클린턴의 특사로 방북한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통해 클린턴의 친서를 전달했다.

金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클린턴 대통령에게 양국 관계개선을 위한 매우 실질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미국측이 "이 제안을 놓고 앞으로 趙특사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협의를 진행할 것" 이라고 밝힌 것을 보면 金위원장의 제안이 북한의 미사일.테러지원국 해제 문제 같은 현안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등 중요한 제안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趙특사가 북한의 실질적인 2인자고 '특사 파견' 을 金위원장이 결정한 점에 비춰 백악관 만남은 사실상 클린턴-김정일의 대화였다.

金위원장은 친서에서 미국과 세계에 대한 인식, 양국 관계개선에 대한 철학과 기본방침 등 포괄적인 틀도 언급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趙특사는 도착성명의 맨 앞부분에서 "위대한 장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왔다" 며 자신이 金위원장의 대리인임을 천명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도 "특사 파견은 김정일의 명확한 결정" 이라며 양국간 최고위급 접촉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강조했었다.

趙특사는 또 북한이 남한을 제치고 미국과의 관계를 독자적으로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을 포함한 전체적인 대외 관계개선의 틀 속에서 미국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음을 표명했다.

그는 도착성명에서 '한반도에 구축되고 있는 평화와 화해의 환경' 을 역설했다.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趙특사의 방미를 통해 북.미 정상간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획기적인 趙특사와 클린턴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간에 바윗돌처럼 놓여 있는 까다로운 현안이 얼마나 빨리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과 북한 특사의 만남이란 형식보다 미사일 개발 중단과 적군파 요원 추방 등 미국의 요구에 대해 특사가 가져오는 카드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과연 달라지는가는 적군파 요원 추방 같은 문제에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느냐로 판단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미국은 역사적 의의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한두번의 회담으로 문제의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