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면죄부'로 끝난 외압의혹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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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거액 대출 외압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대로 의혹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대출 보증 압력은 없었고 청와대 사직동팀이 청부 수사하는 것을 이운영(李運永)씨가 정치권 외압으로 오인했다는 것이 수사 결과 요지다.

검찰이 한달 가까이 수사한 결론이지만 실체적 진실이라고 믿기에는 문제점이 너무 많다. 외압 의혹보다 이운영씨 개인 비리 캐기에 초점을 맞춘 듯한 검찰의 자세가 처음부터 불신을 자초하더니 수사 결과도 역시 권력 핵심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우선 수사 결과 발표대로라면 검찰이 피의자도 아니고 참고인도 못되는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장관을 왜 소환했는지부터 의문이다.

朴전장관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운영씨의 일방적인 주장만 있을 뿐인 상태에서 검찰이 통화한 흔적도 찾지 못했다면 朴전장관을 소환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통화 사실을 일관되게 부인해온 朴전장관을 전혀 혐의점을 확보하지 않은 채 공개 소환조사한 것은 정도(正道)를 벗어난 여론무마용 해명 수사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또 귀가길의 朴전장관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고 말했는데 혐의가 없는 사람을 상대로 검찰이 과연 무슨 내용에 대해 '강도 높게' 추궁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밖에 납득하기 어려운 발표 내용도 많다. 우선 사직동팀의 이기남(李基南)경정이 금품을 받고 청부수사했다는 내용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해체 시비가 끊이지 않는 대통령 직할 수사기관이 청부수사에까지 동원됐다면 여간 큰 일이 아니다. 특히 호텔 객실 등에 장시간 불법 감금하고 수사한 것은 묵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李경정이 뇌물수수를 극구 부인하는데다 뇌물.향응 제공자의 신분이나 뇌물 규모.동기.목적 등 석연치 않은 점이 많으니 반드시 보강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 사표 압력과 관련, 최수병(崔洙秉) 당시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말바꾸기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의혹이다.

"임원회의 자리에서 崔이사장이 '청와대 지시'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는 증언도 있지 않았는가.

특히 의혹 사건과 연루된 고위 공직자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은 올바른 자세라 할 수 없다.

신용보증기금 외압 의혹은 한빛은행 불법 대출과 뿌리가 같은 사건인데도 한 수사팀에 맡기지 않고 분산시킨 것도 의문이다.

한빛은행 사건을 이미 한번 수사 결론을 내린 수사팀에 계속 맡긴 것은 의혹을 해소할 의지가 없다는 방증 아닌가.

검찰은 수사를 끝냈다고 하나 국민이 가진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서라도 진실이 규명되고 의혹이 해소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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