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노벨상과 경제 챙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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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 아니라면 이번주는 단연 '노벨 평화상의 1주일' 이 될 것이다. 돌아가는 상황도 "떼어논 당상이나 다름 없다" 는 쪽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경제를 직접 챙기는 강도(强度)를 지난주부터 한 단계 더 올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 질책.문책으론 令 안 서

역대 경제부총리와 재경부장관들을 불러 귀를 기울이고, 대우차.한보철강 사태의 책임을 물으라고 직접 지시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챙겨서는 곤란하다.

정말 지혜와 경험을 그런 자리에서 구하려는 것인지, '경제 대통령' 의 이미지를 다시 살리려고 들러리를 세운 것인지 헷갈린다.

철학과 인식과 경험이 다 다른 역대 장관들이 모였으니 처방이 같을 수가 없고 하다못해 예금부분보장제를 놓고도 "해야 한다" "큰일 난다" 는 주장이 엇갈렸다.

또 최근에 물러난 장관들을 포함해 그들은 모두 다 공개된 자리만 아니라면 경제가 정말 어렵다며 듣고 설득하고 했던 인사들이지 우리 경제를 낙관했던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더도 말고 지난해 말 이후 총선과 남북 관계 개선의 정치 일정 와중에 눈치코치 없이 경제 문제를 계속 들고 나오고 공적자금을 더 넣어야 한다고 했다간 목이 열 개 있어도 모자랐을 것이다.

대우차.한보철강 문제도 그렇다.

왜 일이 그렇게 됐는지 차근차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알아보고 해법을 찾아 실리(實利)를 구하려기보다 여론이 나빠지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며 속죄양을 찾아 정치적 곤경부터 면하고 보자는 식이다.

엄연히 상대가 있는 국제 계약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위약금 한푼 안 걸었다고 다그치지만 대우차는 본계약도 하기 전인 정밀 실사(實査) 단계에 있었고 적잖은 실사 비용은 다 포드 쪽 부담이었다.

조금만 귀를 열어봐도 "실사 단계에 위약금이라니 무슨 소리냐" 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또 대우차가 번듯했다면 '팔려고 내놓지도 않았겠지만 '팔아도 큰 소리 치며 팔았을 것이고 사려는 쪽도 줄을 섰을 것이다.

본계약까지 다 하고 대금 납입 단계에서 깨진 한보철강의 경우에는 우리 쪽이 상대방을 걸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국민 감정을 고려한 제스처일 뿐 소송에서 이길 수도 없고 또 소송을 해봐야 우리 손해라는 것이 한보의 속사정을 자세히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계약서 상의 조건을 우리가 완벽히 이행하지 못해 이미 마음이 떠나 있던 상대방에게 계약 파기의 빌미를 준 데다 대우차와는 달리 새로운 인수자가 나서고 있는 마당에 소송을 걸어봐야 매각만 늦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아직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간 남북 관계 개선에 치중하느라 국정의 우선 순위가 이동했고 경제 정책은 실기(失機)했다.

심기가 뒤틀린 야당과 정치력이 실종된 여당이 싸우느라 부실 처리에 꼭 필요한 법들이 아직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 경제 살리는 리더십 회복을

미적대던 부실 처리를 이제 시한(時限)을 정해놓고 한꺼번에 몰아치기로 해결하려니 앞으로 몇달 사이에 어떤 충격이 이 역시 몰아치기로 닥칠지 모른다.

기업들의 부실을 서로 재보니 "왜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이 하필이면 거의 다 거꾸로 갔느냐" 는 한숨도 나온다.

경제를 챙기려면 정치가 이런 문제들을 진작 풀었어야 했고 또 이제라도 풀어야 한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갑자기 '낙관' 을 질책하고 책임자를 '문책' 하라니 난데 없고 영(令)이 잘 서질 않는다.

남북 관계 개선은 국가와 민족의 대계(大計)며 국제 질서의 새 전기다. 노벨 평화상이 주어진다면 그에 대한 당연한 평가요, 보상이다.

이를 계기로 '돌아온 경제 대통령' 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윗사람을 모시기 위해 경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를 모시기 위해 윗사람의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노벨 평화상의 대가를 경제가 치르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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