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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메이저리그 수퍼스타 박찬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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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처럼 박찬호(朴贊浩.28.LA다저스)선수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경기장에서 보았던 진지함과 조용함은 찾아볼 수 없고 여느 청년처럼 패기가 넘쳤다.

朴선수는 올시즌 세계 최고들이 겨루는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빼어난 성적을 올렸고, 스스로도 "만족한다" 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오는 13일 귀국을 앞두고 개선장군처럼 마음 설레는 朴선수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최고의 성적을 거둔 올시즌을 돌아본다면.

“정상에 오르려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지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처음으로 만족을 느꼈다.그리고 많은 것을 배웠다.”

-전반기만 해도 후반기 대활약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안좋은 기억은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대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배울 건 배웠고 그런 경험이 쌓여 후반기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이겼을 때나 졌을 때나 모든 원인을 정신력과 마음가짐 탓으로 돌리는데.

“모든 삶이 집중력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나는 잠자리에서도 좋았던 일만 집중적으로 생각한다.안좋았던 기억이 방해를 할 때도 있지만 극복하는 훈련을 해왔다.”

-시즌중에도 하루 한시간 이상 참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부좌를 틀고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한다.참선 때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한다.”

-어떤 선수는 야구만 생각하기 위해 시즌중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다.시즌중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때나 원정경기 숙소에서 거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책 속에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책은 대부분 팬들이 보내주는데 약 2백권정도가 그렇게 모였고 한 시즌에 보통 대여섯권을 읽는다.최근 ‘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소설이나 시집보다는 주로 철학책을 즐겨 읽는다.책을 읽으면 방해를 받지 않아 좋다.”

-올해 가장 인상깊었던 경기는 첫 완봉승을 거둔 18승째가 아니었나.

“아니다.4월 11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 경기가 가장 인상깊었다.그날은 신축한 퍼시픽벨 구장 개장일이었는데 다양한 행사와 많은 관중들이 모인게 마치 포스트 시즌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이 경기에서 승리한 뒤 플레이오프에 나가도 잘 던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올해 성적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10패째 기록이 기억에 남는다.당시 네 차례 등판을 남겨놓고 16승을 올린 상황에서 콜로라도 로키스에게 패했는데 그때 배운게 너무 많았다.”

-패한 경기에 애착이 간다는건 이해가 안된다.

“안좋은 것은 잊어버린다고 해서 그때 경험마저 잊어선 안된다.안좋은 일을 경험하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배울건 배워야 한다.”

-올해 시범경기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해 팬들이 걱정했다.

“시범경기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런 마음 가짐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믿는다.케빈 브라운도 내게 필요한 것만 찾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팀 동료인 케빈 브라운은 지난해 朴선수가 부진할 때 심리학자를 만나볼 것을 권유했다.올해도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았나.

“유명한 스포츠 심리학자인 도프만박사와 전화 통화하면서 30분가량 조언을 들었다.올시즌 세차례 직접 만난 적도 있다.”

-인복(人福)이 있는 편인가.

“확실히 인복이 따라줘 여기까지 왔다.입단 당시 피터 오말리 구단주와 토미 라소다 감독를 만났고 마이너리그 투수코치 버트 후튼과의 만남도 귀중했다.올해는 노장 포수 채드 크루터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어떤 면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나.

“주위에서는 그의 투수 리드를 많이 칭찬하지만 내게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선배를 만난 것이 더욱 중요하다.크루터와는 올시즌 스프링캠프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야구는 물론 사생활까지 많은 얘기를 나눴다.특히 자신이 루키시절 겪은 놀란 라이언이나 찰리 허프등 대투수들의 경험담을 얘기해줘 도움이 됐다.”

-다저스는 팀웍에 문제점이 많은 팀으로 알려져 있다.올해도 7월 중순 삭발을 했는데.

“무언가 다른 것을 추구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머리를 자르거나 변화를 시도한다.나도 마찬가지로 내 자신에게 충실하려고 머리를 깎았을 뿐이다.팀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메이저리그에서도 알아주는 슈퍼스타가 됐다.유명세를 치를 수 밖에 없어 이십대 후반 젊은이들의 평범한 삶이 부러울 때가 있을텐데.

“어느 장소,어느 때를 막론하고 자유롭지 못하다.말 한마디,행동 하나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고 때로는 눈빛마저도 조심해야 한다.

어떤 때는 억울한 생각이 들 정도다.나는 야구만 잘하고 싶었지 이런 것을 원한건 아니었다.그러나 나로 인해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과 내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불편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간다.”

-김병현(金炳賢·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선수는 후반기들어 지친 느낌이었다.

“무척 아쉬웠다.하지만 잠재력이 뛰어나 곧 극복하리라 믿는다.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 하나 하나가 모두 필요하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김병현뿐만 아니라 미국에 진출한 한국인 후배들에게 부탁할게 있다면 건강하라는 것이다.몸만 아프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 온다.”

-시드니올림픽 야구 한·일전은 관심의 초점이었다.일본을 연파했을 때 소감은.

“통쾌했고 말할 수 없이 기뻤다.함께 출전하지 못했지만 한·일전 결과를 보고 내 마음속 깊숙히 진한 무엇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현재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시드니올림픽에 고무돼 늦어도 2003년에는 메이저리거들도 모두 대표선수로 출전하는 야구 월드컵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성사돼서 대표선수로 뽑아만 준다면 틀림없이 한국 대표 유니폼을 입고 출전할 것이다.”

-친동생처럼 돌봐주던 선배 투수 오렐 허샤이저가 시즌 도중 초라하게 은퇴했다.

“모든게 영원할 수는 없지 않은가.문제는 자신의 의도대로 기분좋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허샤이저의 은퇴는 내게 아쉬웠다.하지만 정상에 있을 때 은퇴해야한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현재일 뿐,미래에 대해서 섣불리 장담하고 싶지 않다.”

-며칠 있으면 한국을 방문하는데 일정은.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팬들과도 만날 수 있어 설렌다.공식 행사에 참석하기보다 가능한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내년을 대비해 휴식을 취한다는 생각에서 미일 올스타전에도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

LA지사=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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