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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광우병’편 번역·감수한 정지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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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0일 문성관 판사는 PD수첩 제작진에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제작진이 번역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고 주장한 정지민(28·사진)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정씨는 PD수첩 ‘광우병’편의 번역과 감수에 참여했다. 지난해 6월 번역 왜곡 문제를 처음 제기했다. 이날 오후 경기도에 있는 정씨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무죄 판결은 예상도 못 했다”며 “판사가 처음부터 결론을 내놓고 짜맞춘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죄 판결이 뜻밖인가.

“어이가 없다. 민사소송 1, 2심에서 이미 허위보도 부분이 인정됐는데 판사가 고등법원의 판단을 무시하는 것인가. PD수첩 쪽에서도 이번 재판에서 보도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판사가 피고인 측 주장보다도 앞서 나간 것이다.”

-왜 이런 판결이 나온 것 같나.

“판사가 처음부터 무죄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짜맞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판사가 검찰 측 주장은 아예 안 들은 것 같다.”

-정지민씨는 제작에 관여할 위치가 아니라서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증인으로 부르지도 말았어야 한다. 판결문에서 나에 대해 인신공격적으로 언급해 놓은 것을 보고 화가 났다. 내가 피고인도 아니고 증인인데 그렇게 자세하게 판결문에 언급하나. 그만큼 판사가 내 증언에 압박을 느꼈던 것인가 싶다.”

-대응할 생각이 있나.

“판사를 고소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편으로는 그냥 무시하고 싶기도 하다. 내가 분개하지 않아도 사법부 개혁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 않은가.”

-정지민씨는 PD수첩 쪽이 제출한 테이프 4권 중 1권만 번역했다는데.

“나는 아레사 빈슨의 초기 증상과 위 절제 수술에 관한 부분을 맡았다. 그 내용만으로도 빈슨의 사망원인이 vCJD(인간광우병)가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 번역은 안 했지만 방송에 나온 영어 취재 부분은 내가 전부 감수했다.”

-위 절제술로 사망했을 가능성에 관한 취재 내용 자체가 없다고 한다.

“내가 번역한 부분에 분명히 있었다. 빈슨의 어머니가 위 절제술 후유증에 관해 말하는 내용이 오랫동안 나온다. 원본 테이프를 제출받았다면 당연히 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방송에서 뺀 것은 왜곡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a variant of CJD’라는 표현이 미국에서는 vCJD를 뜻한다고도 했다.

“그건 ‘CJD의 일종’이라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vCJD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PD수첩 측에서 제출한 자료 중에도 ‘CJD의 일종’이라는 뜻으로 그 표현을 사용한 것이 있다. 판사가 일방적으로 PD수첩 편만을 들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그런 주장을 할 수 없다.”

-PD수첩이 국민의 건강권을 우선하다보니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다소 과장하게 됐다고 볼 수도 있는데.

“언론의 비판과 감시도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권이 걱정됐다면 더욱 정교하게 취재해서 보도했어야 한다.”

-항소심이 열릴 예정인데.

“나는 가을에 유학을 갈 예정이다. 하지만 외국에 있더라도 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귀국해 증언할 것이다. 난 남달리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이념적 성향도 없다. 하지만 논리적이지 않은 것, 진실이 아닌 것은 참을 수 없다. 1심 판결이 이렇게 나왔다고 해서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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