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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일본 최고 부자’ 야나이 유니클로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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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구찌·루이뷔통·베르사체 같은 명품 패션의 시대는 저물고, ‘패스트 패션’의 시대가 왔다. 패스트 푸드처럼 입을 만하면서도 값이 싸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의류가 시장의 주류가 됐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배경이다.

일본 패스트 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 그는 늘 자사의 유니클로 옷만 입는다. [중앙포토]

‘유니클로’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일본 패스트 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柳井正·61·사진) 회장은 그런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19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패션시장의 흐름을 이렇게 요약했다.

“글로벌 시장의 메인 플레이어가 바뀌고 있다. 우리처럼 미들, 매스 브랜드가 세계 의류 시장의 주류가 될 것으로 본다. 한국과 중국, 파리와 뉴욕도 마찬가지다.”

 시골 옷가게에서 출발해 포브스가 선정한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된 야나이 회장은 20대 때 ‘백수’가 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평소 일에 대한 신념이 남다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20~30대에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에 따라 일생이 결정된다. 이때 편하게 지내면 평생 고생한다. 빨리 일을 찾아 열심히 파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그는 올해 해외 진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다음 달 말 러시아 진출을 시작으로 올해 중 아시아는 물론 뉴욕·파리에도 점포를 확대한다.

그는 “기업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망한다”며 “삼성전자가 전자에서 세계 1등이 된 것처럼 우리는 소매업에서 세계 1위가 되는 것을 목표로 계속 성장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의류회사에 대해선 “글로벌 브랜드를 키운다면 패스트 리테일링이나 삼성전자처럼 뉴욕· 파리로도 진출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영전략? 머물면 망한다, 고객을 창조하라”

푸근함과 강렬함이 동시에 담긴 표정이었다. 일본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패스트 리테일링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의 첫인상이다.

그는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신문을 본다. 신문 속에 세상의 모든 정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서 경영의 힌트를 얻는다고 했다. 출근 시간은 오전 7시. 복장은 어김없이 온통 유니클로(UNIQLO)다. 공식 행사가 있어도 정장을 입지 않고 캐주얼한 유니클로를 입는다.

19일 도쿄 본사에서 그를 만나 불황 속에 빛나는 그의 경영전략과 인생관을 들어봤다.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경영자답게 생각은 명확하고 간결했다. 그는 또 한국의 삼성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불황으로 고전하고 있다. 유독 유니클로만 호황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인가.

“한국도 마찬가지다. 의류 소매업은 늘 불황이었다. 불황 속에서도 팔리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의류는 의류업끼리만 경쟁하는 게 아니다. 고객의 지갑에 들어 있는 돈은 어디로든 간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고, 자동차를 구입할 수도 있으며, 휴대전화도 살 수 있다. 의류업체도 그 안에서 경쟁해야 한다. 이를 생각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 아무 것도 안 하면 팔리지 않는다.”

-너무 잘 팔리기 때문에 ‘유니클로가 잘될수록 나라가 망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완전히 반대다. 유니클로가 번영해야 나라가 번영한다. 한국의 기업 가운데 삼성(삼성전자)을 존경한다. 업종은 다르지만 하고 있는 것은 같다. 글로벌화다. 한국의 산업이 세계의 산업이 된 경우다. 일본도 세계로 나가야 한다. 그동안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 있던 일본의 물건을 갖고 나가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일본 기업은 모두 망한다. 한국도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런 환경에서 한국만 생각하면 어떻게 발전하겠나. 일본에선 모두 우물 안에서만 생각해 왔다. 이런 보호주의 아래서 사람 외에 아무 것도 없는 일본은 생존할 수 없다.”

-특별히 취하고 있는 경영전략이 있다면.

“우리에겐 독특한 것이 없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누구든 납득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기업은 한 장소에 머물면 안 된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제자리에 머물면 망하니까 앞으로 나가고, 미래에 맞춰 변화한다. 굳이 있다면 ‘경영 23개조’ 정도다. 서른 살 무렵 만들어 지금까지 쓰고 있다. 좋은 회사는 전 세계 어느 회사나 같은 원리로 돌아간다고 본다. 좋은 회사의 에센스와 본질을 모아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제1조는 ‘고객이 원하는 것에 부응해 고객을 창조하는 경영’이다.”

-일본에선 버블 경제의 후유증이 20년이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유니클로가 잘 팔리는 것은 디플레나 버블 붕괴와 관계가 있나.

“전혀 관계가 없다. 일본 국내 이상으로 해외에서 잘 팔린다. 경기가 좋은 중국에서도, 뉴욕이나 파리에서도, 한국에서도 잘 팔린다. 객단가(한 명의 고객이 구입하는 평균 금액)도 지난해보다 올랐다. 우리 이름을 팔아 디플레를 합리화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어디가 디플레인가. 우리의 간판상품인 히트테크 스웨터는 1500엔이다. 대부분의 경쟁사 상품은 1000엔 이하다. 그래도 팔리지 않는다. 우리는 2005년 주요 국내 신문 1면에 ‘유니클로는 저가격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가격에 비해 좋은 상품이라는 말은 듣기 싫다. 그냥 좋은 상품이라고 평가받고 싶다.”

-일본에서는 중소기업의 도산이 그치지 않고 있다. 불황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길이 있는가.

“있다. 대기업도 모두 영세기업, 중소기업 출신이다. 따라서 반드시 성장해야 하며, 이익을 내야 한다. 지금의 사업을 유지하고자 하면 절대로 안 된다. 사업은 사장 혼자만 하면 안 된다. 사장이 먼저 불황이다, 돈이 안 벌린다 하며 현상유지만 하려 한다면 그 자리에서 끝이다. 부하들은 사장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 한다. 사장이 비관적으로 말하면 그 회사에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장이 희망을 가져야 사원들도 희망을 갖는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서 일본 최고의 부자로 꼽혔다.

“잘 생각해 보라. 기업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시골 출신이다. 탄광이 있는 가난한 곳이다. 그곳 상점가의 허름한 양복점 가게가 출발이었다. 부자가 될 가능성은 제로였다. 더구나 섬유 소매업이었다. 그래도 됐다는 것은 다른 산업에는 더 엄청난 ‘찬스’가 있다는 얘기다. 모두 부정적으로만 생각한다. 어쩌면 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경기가 나쁘니까, 하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올해는 삼성의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삼성의 경영이나 글로벌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점이나 배울 점은.

“이건희 회장이 ‘와이프만 빼고 모두 바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앞으론 매출액을 4000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했다. 삼성은 가능하다고 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섬유(의류)와 소매업에서 삼성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인텔·애플·구글 등도 세계적으로 상품을 팔고 있다. 어떤 기업도 이렇게 할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은 자원이 없어 불리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유리하다. 인재와 자본과 기술이 있다. 개발도상국가들엔 없는 것들이다. 더구나 중국과 인도는 일본과 한국의 성장 센터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도 무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유리한 입지에 넉넉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하토야마 정권은 수출이 잘 안 되니까 내수를 진작시키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 주장은 어설픈 얘기다. 시장이 글로벌화하면서 수출과 내수에 구분이 없어졌다. 기업이 세계 어디든 진출하는 세상이 됐다. 내수로 국경을 만들어선 일본은 침몰한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시골 양복점서 세계 5위 의류 브랜드로
‘서점서 책 고르듯 옷 사게’ 배려 마케팅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

태어날 때부터 옷장사를 하라는 운명이었을까.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시골 동네의 양복점집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일본 남부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下關) 근처의 우베(宇部). 번화한 대도시와는 먼 곳이다.

도쿄로 유학을 가 와세다(早稻田)대를 졸업했지만 마땅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한동안 ‘백수’생활을 해야 했다. 보다 못한 그의 부친은 견문이나 넓히라며 아들에게 200만 엔을 쥐여주고 배낭여행을 떠나게 했다. 그렇게 90일간의 세계여행이 시작됐다. 이때의 경험이 사업에서 큰 밑천이 됐다고 한다. 귀국 후에는 일본 최대의 유통업체 이온에 취직해 유통을 경험했다. 이 또한 나중에 훌륭한 자산이 됐다.

그는 가업을 잇기 위해 회사생활을 접고 낙향했다. 그런데 시골 양복점은 그릇이 영 작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세계적인 의류회사를 목표로 삼았다.

모든 경영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했다. 1984년 6월 히로시마(廣島)에 유니클로 1호점을 냈다. 인적이 드문 오전 6시에 문을 열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등교하면서 필요한 옷을 사가도록 배려한 아이디어였다. 이런 발상이 먹히면서 개점 초부터 유니클로엔 장사진을 이뤘다.

유니클로는 ‘유니크 클로딩’의 줄임 말이다. 소비자에게 편하게 부담 없이 독특한(유니크) 옷(클로딩)을 제공하자는 철학에 따라 그가 스스로 고안해 냈다. 이렇게 시작한 유니클로는 현재 자라·H&M 등에 이어 세계 5위의 거대 브랜드가 됐다. 미국의 시사 경영지 포브스는 지난해 그의 재산이 61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소프트뱅크의 손마사요시 등을 제치고 일본 1위를 기록했다.

그는 원리원칙을 중시한다. 그의 사무실엔 ‘가게는 고객을 위해 존재하고, 직원과 함께 번영하며, 점주와 함께 망한다’는 금언이 붙어 있다. 그는 “이 말은 기업 경영의 정수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본다”고 말한다. 그래서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면 고객에게 구매를 권유하는 일이 없다. 고객은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처럼 점원들 눈치를 보지 않고 매장을 돌아볼 수 있다.

그는 65세가 넘으면 ‘노해(老害)’를 끼치므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지론도 갖고 있다. 경영은 지력이 원천이고, 사람을 설득하는 작업의 연속이어서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체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그는 CEO 역할은 이미 조금씩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회장직에 비중을 두면서 후계자를 육성 중이다. 또 히토쓰바시(一橋)대 경영대학원과 공동으로 경영자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5년간 200명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그는 “이들이 경영 변혁의 기폭제가 되도록 할 생각”이라며 “이들 중에 나의 후계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니클로의 성장을 스포츠에 비유한다. 혼자 뛰는 달리기는 재능이 없으면 100m를 빨리 뛸 수 없다. 그러나 사업은 단체경기이므로 자신이 약한 곳을 보완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1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최근 한국에서도 소개된 『1승9패』라는 자서전에도 나와 있다. 그는 “사업에는 반드시 실패라는 난관을 만나게 되지만 단점을 보완해 계속 도전하면 언젠가는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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