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도 티켓 사야 가는 곳, 원칙 지키니 박수가 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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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05년 LG아트센터의 화제작이었던 세계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러프 컷’의 한 장면. 개관 10년을 맞은 LG아트센터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 예술가들도 그 무대에 서는 걸 자랑할 정도가 됐다. [LG아트센터 제공]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이곳 공연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뮤지컬이든, 무용이든, 혹은 기획공연이든 대관이든 딱히 관계 없었다. 공연장 이름 하나로 ‘명품’이란 신뢰를 주는 곳, 바로 LG아트센터(대표 김의준)다.

2000년 3월 개관한 LG아트센터가 10주년을 맞았다. 관객들은 여태껏 보기 힘들었던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물을 편안히 즐길 수 있게 됐다. 상류층을 상대로 한 초대권을 없애고, 일반 관객과 정면 승부를 벌였다. “LG아트센터의 지난 10년은 한국 공연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간”이라는 평마저 나왔다.

◆세계 거장이 오다=무용계의 신화적 존재인 피나 바우쉬(독일·2009년 작고)는 2004년 한국을 찾았다. 한 달간 머물면서 고궁 등 역사적인 명소도 들러보았다. 후미진 뒷골목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후 좀처럼 정제되지 않는 한국을 낚아챈 ‘러프 컷(Rough Cut)’이란 작품을 완성했고, 이듬해 6월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렸다. 바우쉬는 “LG아트센터의 열정에 감복,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LG아트센터는 세계적인 거장들을 불러들였다. 현대 러시아 연극의 대부 레프 도진, 유럽연극상에 빛나는 로베르 르빠주, 이스라엘 무용계의 선구자 오하드 나하린,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스 등을 국내 처음 소개했다. 매튜 본·보리스 에이프만·실비 길렘·파비오 비온디 등 ‘엣지’ 있는 아티스트들이 열광적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바탕엔 LG아트센터가 있었다.

◆도발적이고 실험적인=2002년 11월. LG아트센터 무대는 수영장으로 탈바꿈됐다. 독일 탈리아 극장의 ‘단테 신곡 3부작’이란 공연의 ‘지옥’편을 위해 3만2000리터의 물을 무대에 쏟아 부었다. 2002년 ‘검은 수사’를 공연할 때엔 1층과 3층을 막고, 2층 발코니에 무대를 만들었다. 2003년 러시아 극단 데레보의 작품 때엔 객석을 모두 비운 채 무대 위에 400석 객석을 만들어 관객을 밀착시켰다. 한국에선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7시30분짜리 연극(형제자매들)도 올라갔다. 고정관념의 파괴였다. 공연장의 혁신이었다.

◆공짜표를 없애라=김의준 대표는 예술의전당 출신이다. 그가 전당에 있으면서 가장 골치 아픈 게 초대권이었다. “초대권을 받는 이들은 힘 좀 쓰는 분들 아닌가. 드려봤자 제대로 보지도 않으셨고, 오시면 좌석이 ‘누구보다 안 좋더라’라며 오히려 욕만 먹기 일쑤”였다. 그는 LG아트센터 대표를 맡게 되자 가장 먼저 최고 경영진을 찾아가 “초대권이 있으면 LG계열사 고위층 챙기느라 팔 티켓 없다. 회장님부터 티켓 사서 보러 오시라”고 간청했다. 직원들도 직접 자기 돈을 내고 티켓을 산다.

초대권을 없앤 대신 고객 만족도를 높였다. 1년 프로그램을 미리 공지한 뒤 시즌 티켓제를 도입, 할인된 가격으로 서비스했다. 관객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어 그들 개개인의 입맛에 맞는 관람을 유도했다. 공연계에도 과학적인 마케팅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오래 공연할 수 있다=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LG아트센터에서 7개월간 공연됐다. 그전까지 장기공연 하면 길어야 3개월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70억원의 수익을 남겼고, 한국 뮤지컬의 산업화를 알렸다. 이후에도 뮤지컬 ‘아이다’가 8개월간 공연됐고, 올해 ‘빌리 엘리어트’는 6개월 공연될 예정이다. 가장 예술성이 높으면서도 가장 상업적인 공연이 가능한 게 LG아트센터였다.

최민우 기자

◆LG아트센터=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해 있다. 1103석의 공연장 하나만 갖고 있으면서도 연극·뮤지컬·무용·클래식·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전문가와 일반 관객 모두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한국표준협회가 주관한 공연장 부문 품질 지수에서 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을 제치고 2007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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