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外風지대' 월드컵 조직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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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02년 월드컵이 채 2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월드컵축구조직위원장 자리가 또다시 정치 논리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지난 8월 박세직 위원장이 정부측과 갈등 끝에 물러난 데 이어 느닷없이 공동위원장안이 불거져 나왔다.

명분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겸 국제축구연맹(FIFA)부회장이 대외적인 문제를 담당하고, 나머지 한명은 경기장 신축 등 국내의 일을 처리한다고 하지만 칼로 무 자르듯 업무가 명확하게 분장될지 걱정이다.

특히 위계 질서가 있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의 협조도 톱니바퀴 돌아가듯 하기 힘든데 공동위원장이 사심없이 협력을 잘 할는지 의문이 앞선다.

당장 조직위 실무진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앞으로 도대체 누구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야 할지 공동위원장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나 정치권이 월드컵축구조직위원장직을 목에 힘을 줄 수 있는 한 자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나도 하겠다고 나서다 보니, 그렇다면 편법으로 두명이 하라고 결정한 것이나 아닌지 염려된다.

일본은 1997년 조직위 출범 때부터 나쓰 쇼 위원장이 4년째 자리를 지키며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초대 이동찬 위원장이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났고, 朴위원장도 그만뒀다. 이어 鄭회장이 두달 동안 대행을 맡아왔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조직위와 10개 개최도시는 81건의 위법.부당행위를 한 것이 적발됐다. 경기장 건설과 교통.숙박시설 준비 미비점도 드러났다. 위원장이 자주 바뀐 게 원인일 수 있다.

올림픽과는 달리 월드컵은 큰 틀에서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FIFA의 지시를 받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게다가 공동 개최국 일본과도 끊임없이 입장 조절과 협의를 해야 한다.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월드컵 준비를 해나가야 할 조직위원회의 수장이 두명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비효율과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월드컵은 얼마 남지 않았다. 서울올림픽처럼 성공한 대회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위원장 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정영재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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