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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이지스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 총리의 독도 망언으로 다시 국민감정이 뒤끓고 있다. 잊혀질 만 하면 터져나오는 망언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1996년엔 상황이 지금보다 심각했었다.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은 한.일간에 독도를 둘러싼 마찰이 계속되자 "본때를 보여주겠다" 고 호통쳤다.

독도 경비대장을 전화로 불러 위로하는 모습이 TV에 소개되기도 했고, 독도 인근해역에서 해.공군 합동 기동훈련도 실시했다. 이처럼 대통령이 직접 나서 독도 수호의지를 다지자 국민은 뿌듯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본때' 운운한 것은 지나쳤다는 게 일반적 평가였다. 물론 일본에서는 난리가 났다. 당시 서울에 사는 한 일본인 친구가 던진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金대통령이 제정신인가. 기동훈련은 진짜 코미디다. 이지스함 한척이면 몇분도 안돼 모든 상황이 끝날텐데... "

'이지스' 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딸 아테네에게 선물한 방패 '아이기스(AE GIS)' 를 영어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어떤 창칼도 막아낸다는 방패를 뜻한다.

실제로 이지스함은 '꿈의 구축함' 으로 불리는 현대 해군의 총아다. 이지스함이란 이지스 체계, 즉 종합적인 전투 및 방어체계를 갖춘 구축함을 말한다.

수색.탐지.정보처리.공격에 이르는 모든 기능을 컴퓨터가 일괄 처리한다. 레이더 추적범위와 미사일 사정거리가 수백㎞에 이르고 18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 적 함정이나 항공기는 물론, 날아오는 미사일까지 요격한다.

현재 이지스함을 가진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으로, 4척을 실전배치 중인 일본은 오는 2005년까지 1척을 더 보유할 예정이다. 98년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을 정확하게 추적한 것도 바로 이지스함 '묘코' 였다.

그러니 그 일본인 친구의 말이 그리 과장된 것도 아니다. 실제로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의 해군이 일전을 벌인다면 불과 몇시간 내에 일본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다고 말한다.

우리 함정들은 전투현장에 가는 도중 대부분 격침될 것이라는 좀더 우울한 분석도 있다. 다 이지스함의 위력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해군도 이지스함을 도입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바다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가는 시점에 대양 해군으로 나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한다. 다만 한척에 1조원 이상의 거금이 소요되는 만큼 다시는 린다 김 사건 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다.

유재식 베를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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