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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순서 뒤바뀐 정치권 일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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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회를 공전시키고 민생을 외면하고 있는 정치권이 여야없이 적극적인 것이 하나 있다. 공적자금 감시기구 도입이다.

국회가 겉도는 바람에 공적자금은 언제 조성될지 모르는 판인데, 감시기구부터 먼저 만들자고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말 당무회의에서 당내에 '공적자금관리 및 금융구조개혁 특별위원회' 를 만들기로 했다.

국회에도 공적자금을 관리.감시하는 기구를 만들 생각이다. 한나라당도 국회의 감시기능을 살려 국회 내에 공적자금을 관리하는 기구를 두고 조성.배분.사후감독 등을 해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이미 공적자금 추가조성 규모를 밝히면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마음대로 한다는 비난을 의식, 위원의 반 이상을 민간전문가들로 구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잇따른 감시기구 설립 움직임은 정부의 공적자금 집행을 못믿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공적자금 중 상당 부분이 국민부담으로 돌아올 게 뻔한 마당에 정치권이 감시자로서의 기능을 다하겠다고 나선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한나라당 이한구 제2정책조정위원장은 "감시기구는 자금집행 등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사후적으로 집행과정의 투명성 등을 따져보자는 취지" 라고 설명한다. 잘만 운영되면 입법부와 행정부간에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자칫 사공만 늘어나는 결과가 빚어지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공적자금은 조성 못지 않게 투입 시기가 중요한데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여야의 공적자금 감시기구의 기능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자칫 사후적인 감시 이외에 집행과정에까지 일일이 간섭할 경우 공적자금 집행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며 경계심을 표했다.

무엇보다 일의 순서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공적자금 집행 감시기구를 만들기 전에 자금조성부터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줘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의원들의 관심은 고맙지만 코앞에서 불길이 번지고 있는데 불은 끄지 않고 불낸 놈이 누군지부터 따지자는 모양이라 안타깝다" 고 꼬집었다.

송상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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