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라톤 왜 부진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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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3회 연속 메달을 장담하던 한국 마라톤이 맥없이 무너졌다.

결과가 기대했던 것과 천양지차를 보이자 마라톤 참패는 지도자들의 오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최경열(한전).오인환(삼성).김복주(한체대)코치는 올 여름 시드니 코스를 사전 답사한 뒤 "마라톤이라기보다 크로스 컨트리 코스에 가까워 스피드가 아닌 체력에서 메달 색깔이 가려질 것" 이라는 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에서 "시드니 코스는 표고차가 80m를 넘는 크고 작은 언덕이 27개나 되고 레이스 당일 기온이 20도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돼 체력 부담이 상당할 것" 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대표팀은 내리막과 오르막길이 혼재한 시드니 남쪽 나라에서 체력과 지구력 보강에 초점을 맞춘 훈련에 전념했다.그러나 이같은 전망은 지난 24일 여자마라톤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다카하시 나오코(일본)를 비롯한 메달리스트 모두가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답사팀의 예상을 비웃었다.

여기에 시드니 코스를 직접 답사한 황영조 KBS 해설위원은 "분석 결과 출발 지점 내리막 표고차만 80m쯤이었고, 대부분 20~25m에 불과해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어렵지 않은 코스로 판단된다" 고 말했다.

결국 한국 코칭스태프는 부랴부랴 승부처를 40㎞에서 33㎞ 지점으로 앞당겨 승부를 걸기로 전략을 수정했지만 스피드를 보강하기에는 때가 늦었다는 지적이다.

예상대로 초반부터 스피드가 뛰어난 아프리카 선수들이 위주가 돼 선두그룹을 빠른 페이스로 이끌었고, 스피드 훈련이 부족한 국내 선수들은 초반에 오버 페이스, 승부 한 번 걸어보지 못하고 중반부터 뒤처지기 시작했다.

이상철 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강화위원장은 "맑은 공기, 나무가 늘어선 경관 등 쾌적한 레이스 환경이 선수들의 피로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답사팀이 간과한 듯 보인다" 고 뒤늦게 아쉬워했다.

오인환 코치는 이같은 지적에 대해 "우승기록이 2시간10분대에 나왔다면 쉬운 코스는 절대 아니었다. 따라서 체력 훈련에 초점을 맞춘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스피드에서 뒤지지 않는 이봉주가 15㎞ 지점에서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승부를 걸어볼 만했다는 주장이다.한마디로 작전 실패가 아니라 불운이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봉주는 경쟁국가 선수들의 고의성 짙은 견제를 피할 수 있는 방지책 마련에 소홀했고 자신의 기록에 턱없이 모자라는 부진을 보인 백승도와 정남균의 경우 훈련 전략에서부터 어긋났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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