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8월 중국 베이징(北京)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홍위병들이 정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중국 지식인들이 즐겨보는 신경보(新京報)는 19일 “잘못된 역사라도 있는 그대로 보존해 후세에게 과거를 반성하는 교육 현장으로 삼자는 취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문물로 지정된 곳은 531명이 집단으로 매장돼 있는 충칭 사핑(沙坪)공원 내 홍위병 공동묘지다. 홍위병들이 이곳에 대거 묻히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66년 12월 충칭에선 문혁을 일으킨 마오쩌둥(毛澤東)을 지지하는 조반파(造反派)와 보수파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다. 이듬해 조반파는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눠졌다. 두 파벌은 7월 7일 충칭의 훙옌(紅巖)디젤기계공장에서 유혈 충돌했다. 당시 9명이 숨지고 200명이 다쳤다. 우파 지식인을 상대로 한 투쟁을 일컫던 문투(文鬪)가 이때부터 총칼과 탱크까지 동원한 무투(武鬪)로 악화됐다.
아래 왼쪽은 충칭시 사핑공원 내 홍위병 묘원. [중앙포토]
이념 대립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극단적 투쟁의 상처가 깊었기 때문에 충칭시 정부가 홍위병 묘지를 문물로 지정하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2005년 이 일대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묘지의 처리 방향을 놓고 “죄상을 감안해 묘지를 파헤쳐 버리자”는 주장과 함께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보존하자”는 주장이 5년간 맞섰다.
충칭시 관계자는 “홍위병 묘지 보존 결정은 ‘역사를 거울로 삼는다(以史爲鑑)’는 정신을 실천한 사례”라 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