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참사로 본 해외재난 지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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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액은?” “100만 달러(11억2700만원)다.” “이게 전부인가. 더 지원할 계획은?” “현재론 없다.”

아이티에 강진이 터진 직후인 14일 정부 관계자는 지원액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흘 뒤인 18일 정부는 “지원액을 10배로 늘려 모두 1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태도를 확 바꿨다. “미국 연예인 한 명이 100만 달러를 내는데 국가 차원에서 너무 야박한 액수”란 비판이 쏟아지고 이명박 대통령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의 통화에서 추가 지원을 약속하면서 벌어진 반전이었다. 하지만 95억원에 불과한 정부의 ‘해외재난 긴급구호 예산’을 감안하면 예고된 혼선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7년 첫 편성된 이래 4년째 95억원(2010년 예산의 0.003%)으로 고정돼온 이 예산은 올해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예산 10억 달러 중 0.8%를 차지한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비율(8∼9%)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정부는 매년 지구촌에 20여 건의 대형 재해가 발생한다는 예측 하에 95억원을 집행해왔다. 이에 따라 초대형 재해에는 약 100만 달러, 그보다 작은 재해엔 수만~수십만 달러 지원에 그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래도 워낙 액수가 작아 조기에 예산이 동나는 경우가 많다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인도네시아 강진 등 대재앙이 잇따랐던 지난해는 10월에 예산이 바닥났고, 역시 재해가 많았던 2008년에도 지출이 초과돼 다른 예산에서 전용해야 했다. 당장 올해도 20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아이티 한 곳에만 250만 달러(1000만 달러 중 정부가 올해 낼 돈)를 지출하게 돼 예산의 32%를 쓰게 됐다. 외교부는 매년 관계 부처에 긴급구호 예산을 늘려 달라고 요청해왔으나 지출액 예측이 어렵고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는 이유 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재난마다 우리의 수십 배를 지원하는 일본을 따라가긴 어렵겠지만 우리와 국력이 비슷한 호주도 우리보다 10배 많은 돈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티 사태와 G20 회의 개최를 계기로 긴급구호 예산을 10배 올려 1000억원 선을 유지하되 예산이 남으면 다음 해로 넘겨 계속 쓸 수 있도록 ‘해외재난 구호기금’을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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