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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신문활용교육] 가훈의 유래와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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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가훈은 온 가족이 지키는 가족 헌법이다. 3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 서예가들이 방문객들에게 가훈을 써주는 행사가 열렸다. [연합뉴스]

“작은 일이라도 착한 일을 할 기회를 놓치지 말자!” H건설사 송병호 대표(60·서울 도곡동)의 하루는 손자들과 가훈을 합창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큰 손자가 5살이 됐을 때 이해하기 쉬운 말을 골라 송 대표가 직접 가훈을 만들었다. 손자들에게 아침마다 군대식으로 가훈을 외치게 한 것은 어려서부터 가훈을 몸에 익혀 평생의 지침으로 삼게 하기 위해서다. 가훈이란 선조가 후손에게 강조하는 교육이념으로 가족 간에 지켜야 할 약속을 말한다. 가훈의 유래와 가치에 대해 알아보자.

왜 만들어졌나

가훈의 원조는 1600여 년 전 중국 남북조시대 학자 안지추가 지은 ‘안씨가훈’이다. 당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분열의 시대였다. 안지추는 난세에도 처신만 올바르면 변을 당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철학을 책 한 권의 방대한 분량의 가훈으로 남겼다. 여기엔 인간관계에서 유의할 점이나 부모 자식 간의 언행, 학문 수양 태도 등에 관한 세세한 규범이 적혀 있다.

동양에서는 ‘나’를 독립적인 개인으로 보는 서양과 달리 ‘가족 구성원’으로 파악한다. 가훈을 중시하는 것도 개인적인 가치를 내세우기 전에 가족이라는 사회 속에서 지켜야 할 법도를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가훈으로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 장군 김유신 집안의 ‘충효’, 고려시대 최영 장군의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도덕적인 생활 태도와 애국심을 강조한 금언이 대다수다.

현대 사회 속 가훈의 가치는

‘가훈 없는 가정은 돛대 없이 표류하는 배와 같다’는 말이 있다. 가훈을 통해 가족 간 유대가 돈독해지고 공동의 목표가 정립되기 때문이다. 성신여대 가정관리학과의 조사에 따르면 가훈이 자녀들의 생활 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릴 때부터 가훈을 통해 반복적으로 몸에 익힌 건전한 습관과 품성이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가훈은 핵가족화로 관계가 소원해진 현대 사회의 가족에 구심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실천해야 할 덕목이 있다면 공감대 형성이 쉽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인회 전 한국자율학회장은 “가훈이 구호로 끝날 경우 자녀들에게 위선을 길러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훈의 진정한 가치는 가족 구성원이 실천 의지를 갖고 행동에 옮길 때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나

부모가 자녀를 올바른 사회인으로 양육하는 데 가장 필요한 지침을 가훈으로 삼는다. 그래서 가훈에는 사회상이 반영되게 마련이다. 조선시대에는 삼강오륜에 근거해 인륜을 가르치는 데 치중했다. 급속한 산업화로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1970~80년대는 근면과 성실이 강조됐다. IMF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90년대 말에는 ‘끝까지 살아남자’나 ‘빚 보증을 서지 말자’ 등의 웃지 못할 가훈도 등장했다.

가훈은 사회를 반영함과 동시에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족 구성원이 곧 사회의 인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선조들이 가훈을 정할 때 가정윤리와 함께 사회 정의를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형수 기자

가훈을 정할 때 유의할 점

- 인륜과 도덕 중시: 부모는 인자하고, 자녀는 효도하고, 형제는 우애하고, 부부는 화순할 것

- 사회 정의 존중: 정당한 법 아래 개인의 복된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서로 배려할 것

- 자립적인 태도: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분수에 맞는 바른 처신의 중요성

- 몸과 마음의 정진: 건강한 몸을 가지고 뜻을 세우며 독서를 통해 정신을 수양함

- 실천 가능한 지침: 남의 본보기가 되도록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실천에 힘써야 함

※자료: 『안씨가훈』(안지추 지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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