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칠레, 피노체트 이후 20년 만에 우파 집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칠레 중도우파 야당 대선 후보인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17일(현지시간) 당선이 확정된 뒤 연설하고 있다. [산티아고 AP=연합뉴스]

중남미에 중도 실용주의 바람이 거세다. 17일(현지시간) 칠레 대통령 결선 투표도 이런 흐름을 확인했다. 최근 중남미 선거에서는 시장 친화적 정책을 내세운 중도 우파 후보들이 선전했다. 좌파 성향 당선자들도 이념에서 벗어나 실용주의를 표방한다. 5년 전 좌파가 휩쓸면서 우파에서 살아남은 인사는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이 유일했던 것과 대조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 수년간 중남미 정치 판도를 장악했던 좌파 세력이 힘을 잃고 중도로 기우는 흐름이 확연하다고 17일 분석했다.

◆칠레, 기업가 출신 후보 당선=칠레 대선 결선투표에서는 중도 우파 야당 후보인 세바스티안 피녜라(60)가 52%를 얻어 당선됐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90년 집권) 전 대통령 정권 이후 20년 만의 우파 집권이다. 좌파의 장기 집권에 식상한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를 대변한 데 힘입었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피녜라는 지난 4년간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집권 기간을 높이 평가하면서 차기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협력과 조언을 당부했다. 또 일자리 100만 개 창출과 연 6% 경제 성장, 마약 근절 등 실용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새 당선자는 칠레 경제를 번영시켰던 중도 시장주의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피녜라도 “우리는 빈곤층과 중산층을 살릴 수 있는 나라를 필요로 한다”며 “근육이 많고 지방이 적은, 강하고 효율적인 국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녜라는 ‘칠레의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총리)’로 불릴 정도로 기업인 출신의 성공한 정치인이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칠레에서 첫 신용카드 사업을 벌여 돈을 벌었다. 중남미 최대 항공사인 란 칠레, 지상파 방송사 칠레비시온, 인기 축구팀 콜로콜로 등을 소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 미디어 재벌이자 프로축구 AC밀란 구단주인 베를루스코니와 비교된다. 피녜라는 자산이 12억 달러(약 1조3500억원)에 이르러 칠레 3위의 갑부다.

◆중남미 우파 바람=피녜라의 당선은 중남미 이념 지도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중남미에서는 올해 코스타리카(2월 7일 총선)·콜롬비아(3월 14일 총선, 5월 30일 대선)·베네수엘라(9월 총선)·브라질(10월 3일 대선) 선거가 예정돼 있다. 특히 바첼레트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를 육박하는 상황에서 나온 피녜라의 당선은 남미 최대국 브라질에서 대선(10월 3일)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서도 룰라 이나시우 다시우바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를 웃돌고 있다. 그러나 집권 노동자당(PT) 후보로 유력한 딜마 호우세피 수석장관은 여론조사에서 제1야당인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 예비 후보 조제 세하 상파울루 주지사에게 밀리고 있다. 다음 달 코스타리카 총선과 콜롬비아 총선(3월)·대선(5월)에서도 우파의 승리가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29일 온두라스 대선에서도 대농장주 출신의 우파 후보인 포르피리오 로보(62)가 승리했다. 같은 날 치러진 우루과이 선거에서는 게릴라 전사 출신의 좌파인 호세 무히카(74)가 당선됐다. 하지만 무히카는 “나의 모델은 룰라 대통령이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룰라처럼 좌파 후보로 당선됐지만 시장 경제를 존중하고,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다.

정재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