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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슬레이 국가대표 ‘우리도 영화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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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 봅슬레이가 ‘바늘구멍’을 뚫었다.

강광배(37·강원도청·사진)가 주축이 된 한국 봅슬레이대표팀은 지난 연말 4인승에 이어 18일(한국시간) 2인승까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경사를 맞았다. 불모지인 한국 봅슬레이 종목이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4인승, 2인승에서 연거푸 출전권을 따낸 것이다.

강광배는 이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2인승 종목 세계 랭킹이 19위여서 상위 17위까지 주어지는 출전권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상위권 국가 중 세 나라의 성적이 좋지 않아 한국과 일본에 차례가 왔다”고 전했다. 이어 “바늘구멍을 통과한 심정이다.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썰매의 자존심을 살리겠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20살 청춘의 늦깎이 열정=강광배는 원래 썰매를 전공한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썰매에 대한 열정이 그에게 ‘한국 썰매 종목의 개척자’라는 명예를 안겨줬다. 강광배는 대학 1학년 때 무주리조트 아르바이트생으로 처음 스키를 타기 시작했다. 1년 뒤 전북스키연맹 회장배 대회에서 우승하며 전문 스키어의 길로 들어섰고, 무주리조트에서 스키 강사로 일할 기회도 잡았다. 그러나 강습 중 사고로 무릎십자인대가 파열되고 무릎연골을 다쳐 더 이상 스키를 탈 수 없게 됐다.

겨울스포츠에 대한 갈증이 그를 썰매로 옮겨가게 했다. 1996년 대한루지연맹과 국제루지연맹(FIL)이 주관한 루지 선수 선발 강습회에 참가, 30명 중 2등을 하며 정식 선수가 됐다. 여름에 바퀴를 단 썰매를 타고 아스팔트를 질주하며 기량을 연마한 그는 98년 나가노겨울올림픽에 루지 선수로 출전했다. 강광배는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것만으로 감격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를 치르고 보니 메달을 따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다음 달 밴쿠버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봅슬레이 대표팀이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연맹(FIBT) 유럽컵 4인승 경기에 출전한 모습. [연합뉴스]


◆절망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강광배는 나가노올림픽 뒤 강습회 때 인연을 맺은 쿤터 렘머러 코치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학 스포츠과학부에 입학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던 중 대한루지연맹으로부터 세대 교체를 이유로 대표선수 자격을 박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구나 또다시 무릎을 다쳐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절망하던 그에게 지도교수는 스켈레톤을 소개했고, 강광배는 다시 열정을 불살랐다. 홀로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을 만들어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에 가입하는 등 고군분투했다.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기량을 쌓으며 대회에 출전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뒤에야 대한체육회(KOC)가 그의 존재를 알았을 정도로 외로웠지만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솔트레이크올림픽 이후 국내에 복귀한 강광배는 “평창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도 다양한 겨울 종목을 육성해야 한다”며 강원도청 봅슬레이팀 창단을 주도했고, 2006년 토리노겨울올림픽에 스켈레톤 선수로 출전했다. 그 뒤로는 “후배들에게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봅슬레이 선수로 전향했다.

◆또 하나의 ‘쿨러닝’을 위해=강광배는 이번 밴쿠버올림픽까지 4개 대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는다. 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등 썰매 3개 종목 모두에서 올림픽 무대를 밟는 세계 최초의 선수가 된다. 썰매 종목을 향한 그의 열정이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셈이다.

강광배는 “솔직히 현재 실력으로 메달은 어렵다. 올림픽에 나서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하지만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일본과 동시에 출전하게 되는 만큼 일본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앞서겠다”고 다짐했다.

허진우 기자

◆봅슬레이(Bobsleigh)=길이 3.80m, 너비 0.67m, 최대중량 630㎏(4인승 기준)인 썰매를 타고 콘크리트 구조물에 인공얼음을 씌운 1200~1500m 길이 코스를 질주하는 경기다. 소요시간으로 순위를 매긴다. 경기장별로 14개에서 19개까지 커브 구간이 있으며, 평균속도는 시속 135㎞, 순간 최대속도는 150㎞까지 나온다. 커브 구간 압력이 중력의 4배까지 달한다. 겨울올림픽에는 남자 2인승과 4인승, 여자 2인승 등 금메달 3개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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