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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무대 최고의 테너 김재형씨 … 4년 만에 귀국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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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의사를 막연히 꿈꾸던 고등학생이 갑작스레 꿈을 바꿨다. 부모님의 반대를 이기고 성악을 전공한 김재형씨는 현재 세계 오페라 무대에 한 해 평균 20여 회 서는 테너로 자랐다. [김형수 기자]

테너 김재형(37)씨는 실패 경험이 별로 없었다. 고2 때 뒤늦게 성악으로 진로를 정하고도 서울대 음대 실기 수석으로 입학했다. 1996년 중앙음악콩쿠르 1위 등 참가대회마다 입상했다. 이후 국내 오페라 무대에 단골 캐스팅 됐다. 학생의 프로무대 진출, 대단한 관심을 모았다.

그는 ‘담대한 구상’을 했다. 유학 대신 무대로 유럽에 진출할 꿈을 키웠다. 99년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극장이 첫 무대였다. 뮌헨 ARD 콩쿠르 2위 입상 후 받은 부상이었다. 배역은 ‘나비부인’의 미국 해군장교 ‘핑커톤’. 그는 “큰 무리 없이 데뷔 무대를 치렀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언론은 혹평 일색이었다. ‘핑커톤에 동양인 테너, 초초상(극 중 일본 여성)에 서양인 소프라노를 캐스팅한 데서부터 실패가 예상됐다’는 식이었다. 그를 캐스팅했던 극장 예술감독이 사임했다. 생애 첫 슬럼프였다. “전혀 예상 밖의 평가라 충격이 더 컸다”고 했다. 일종의 피해의식마저 생겼다.

그는 2000년 이탈리아의 생활을 정리하고 독일로 옮겨갔다.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겸손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실력을 쌓자고 다짐했다. 주목 받지 않는 역할도 선뜻 맡았다. 카셀·비스바덴을 거쳐 프랑크푸르트로 소속극장을 바꾸면서 수많은 레퍼토리를 익혔다.

2008년 기회는 다시 왔다. 영국 오페라의 자존심인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였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에 설 예정이었던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돌연 출연을 취소했다. 그는 하루 전 출연 요청을 받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영상과 악보를 보며 초고속 준비를 했다. 오후 3시 공연 한 시간 전에 극장에 도착했으니 리허설은 배부른 소리였다.

고진감래? 기대 밖 호평이 쏟아졌다. 한 영국 언론에서 뽑은 ‘올해 최고의 무대’ 후보로도 꼽혔다. 이후 파리 바스티유·베를린 도이치 오퍼· 바르셀로나 리세우 등에서 주역 제안이 줄줄이 들어왔다. 주빈 메타·로린 마젤·오자와 세이지·다니엘 바렌보임 등 함께한 지휘자도 눈부시다. 201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과의 계약이 잡혀있을 정도로 몸값이 높아졌다.

김씨는 “인생 그래프를 그린다면 현재는 상승 곡선일 것”이라며 “하강 곡선에서도 즐기면서 기회를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고 말했다. 부드럽고 서정적이던 목소리가 강하고 힘차게 바뀐 것도 ‘이탈리아 수난’ 이후였다. 그 김씨가 이달 모차르트 ‘이도메네오’로 4년 만에 국내 오페라 무대에 선다.

▶이도메네오=21~2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6-5282.

김호정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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