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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프랑스에 간 달라이 라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티베트의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가 중국의 압제를 피해 망명 길에 오른 것은 1959년이었다.

그후 약 40년간 망명정부를 이끌며 세계 50여개국을 순방했다. 그가 가장 자주 방문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라는 점은 흥미롭다.

지금도 9박10일 일정으로 프랑스를 방문 중이다. 이번으로 달라이 라마는 통산 17번째 방불(訪佛) 기록을 세웠다.

안방 드나들 듯한다는 말이 어울린다. 어제 파리 샤를레티 경기장에서 열린 옥외법회에는 1만여명이 몰렸다. 프랑스 추종자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21세기 사회에서 평화.비폭력.자비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프랑스인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불교열풍' 이란 표현에 과장이 없다. 신자만 50만명이다.

지난해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인구 12명 가운데 한 명인 5백만명이 개인적으로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종교가 불교라고 대답했다.

전국에 명상센터로 불리는 선원(禪院)이 2백개소에 달한다. 매주 일요일 오전 공영 TV가 내보내는 종교 프로그램에는 가톨릭.이슬람.유대교와 함께 불교가 빠지지 않는다. 올들어 나온 불교관련 서적만 30종이 넘는다.

20세기의 대표적 핵물리학자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만약 현대의 과학적 사고에 부응하는 종교가 있다면 그건 다름아닌 불교" 라고 말했다.

불교는 특히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 관심이 높다. 프랑스의 촉망받던 분자생물학자인 마티유 리카르가 72년 보장된 미래를 초개같이 버리고 티베트 불교에 귀의한 것이 중요한 기폭제였다.

97년 그는 자신의 부친이자 저명한 철학자인 장 프랑수아 르벨과 '승려와 철학자' 란 대담집을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이든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적 사고와 현대물리학의 양자론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서양에 불교가 전해진 것" 이라고 말한 이는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였다. 한반도에는 4세기에 불교가 전파됐다.

인구센서스를 해보면 전체인구 4명중 한 명 꼴인 23.2%가 불교신자다. 그런데도 달라이 라마 방한 문제에 대해 정부는 중국의 거부감을 내세워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일본은 물론이고 대만에도 갔고, 곧 두번째 대만 방문에 나선다. 정부의 저자세는 문화주권을 망각한 사대주의 굴욕외교의 표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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