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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나 이제 그만 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어린 아이들이 넘어지면 어떤 장면이 벌어지는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아이들은 운다.

특히 엄마가 곁에 있으면 더 크게 운다. 일으키고 위로해주기를 기대한다. 평소에 금지옥엽처럼 보살피던 엄마가 하루는 아이가 넘어져서 우는데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계속 울다가 지쳐버린다. 마침내 엄마에게 와서 "나 이제 그만 울래" 라고 말하면서 달래 주기를 간청한다.

요즘 의사.의대생.의대교수들이 집단적으로 소리내 울고 있다. 희망이 없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의사도 있다.

의약분업을 하려면 제대로 하자는 의사들의 주장이 옳은 것 같기는 한데, 파업의 근본 목적이 더 높은 경제적 수입을 보장받으려는 데 있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의사들과 같이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등 보건 의료 종사자들은, 파업하는 의사들과 파업에 굴복해 국민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려고 하는 정부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하는지, 우는 아이에 대해 엄마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 수 없다. 영화에서 어린 아이라도 독방에 재우는 것을 본다.

그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넘어진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거나, 울더라도 스스로 그칠 때까지 엄마는 내버려 둘 것 같다.

울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미국인들의 자세는 파업 대처에도 이어지는 것 같다. 지금은 치매의 늪에 빠져 있는 전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재직시 공항 관제탑 종사자들이 파업을 했었다.

레이건은 끝까지 관제사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파업을 할 수 있거나 없는 직종이 따로 있다고 한다.

힘없는 일반직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총칼 가진 군인이 파업하면 나라가 어찌 될 것인가. 의사는 파업해도 되는 직종인지 어쩐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의사가 없이 병자가 살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의사들은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지금 의사들만 파업 중에 있지 않다. 국회의원들도 파업 또는 태업(怠業) 중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하는데, 의원들에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는 지 모르겠다.

서로 상대를 향해 '노벨 평화상' 이나 '차기 대통령' 에 집착한다고 몰아붙이는 정치인들은 독하게 마음먹은 표정으로 울지도 않고 '버티기' 를 계속한다.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보다 자신들이 훨씬 더 국민을 위해 걱정한다고 의사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전국의 의사들이 단결해 파업을 계속하면 국민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이길 수가 있다. 원하는 만큼의 수입을 보장받고 체면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국민을 이겨 무엇을 하나. 국민은 경쟁상대가 아니다. 의사가 보살펴야 할 현재 또는 미래의 환자들이다.

병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초심을 가져 보지 않은 의사는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어차피 의사에게 매달리고 존경하게 돼 있다.

여기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떠올린 자체가 의사에 대한 불경이다. 참회할 일이다. 그래도 의사 쪽이 주도적으로 이 대결구도를 풀어야 한다.

본래 청정심으로 돌아가 "나 이제 그만 울래"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멀지 않은 장래에 의사들의 요구 대부분이 실질적으로 충족될 것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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