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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새 화두 '안티 운동'] 전문가 기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이 사회가 성숙하는데 필요한 사항을 백 개쯤 꼽으라면 그 첫머리에 반드시 비판의 자유가 올라가야 한다.

논쟁과 토론, 비판과 대안, 요컨대 안티의 자유는 한 사회의 정신적 성숙을 재는 잣대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비판과 논쟁의 의미를 배운 적이 없다. 수십 년의 독제 풍토에서 흑백의 이분법만 판을 쳤고 동지가 아니면 모두가 적인 폭력만 난무했다.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고 받아쓰기만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안티의 열기는 십분 지지해 마땅하다.

인터넷의 자유분방한 구조는 오랜 동맥경화증을 치유할 수 있으며 바야흐로 젊은 세대는 그들만의 언로를 창출하면서 정보의 일방통행, 수동적인 찬반의 거수기 노릇을 경쾌하게 부정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안티는 그들의 우상에 대하여, 권력화하기 쉬운 스타에 대해서도 호미걸이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기성세대의 도그마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모든 시작이 그렇듯이 아직은 기대 속의 우려를 낳고 있다. 안티의 자유를 위해서는 마지노선이 필요하다.

'자유에 따른 책임' 이 거론되거니와 좀더 소중한 것은 다른 이의 비판의 자유를 최대한 용인하는 태도다.

자신이 어떤 대상에 대하여 안티 사이트를 개설하고 비분강개하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바로 자신에 대한 안티의 자유를 승인할 수 있어야 한다.

주로 대중 스타를 놓고 욕설과 비방이 오가는 안티 사이트를 볼 때 기성세대가 성숙시키지 못한 비판과 논쟁의 풍토는 더욱 아쉬워진다.

자기가 옹호하는 대상은 절대적인 무오류의 존재이며 비난의 대상은 저질의 쓰레기로 취급하는 한 안티 흐름은 흑색 선전장으로 전락할 뿐이다.

정윤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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