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나라가 무너졌다] “병원 온 지 나흘째 … 의사 얼굴도 못 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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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인데 아직 의사 얼굴도 못 봤다.”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빈민촌 시티솔레이에 사는 예술라(21)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쇼스칼 병원에 실려왔다. 규모 7.0의 강진이 일어나던 날이었다. 집 안에 있었던 그는 갑자기 쓰러진 벽이 왼쪽 다리를 덮치는 바람에 정강이가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잠시 후 깨어나 보니 엄마와 동생도 건물 더미에 깔려 있었다. 임신 중이었던 엄마는 갈비뼈가 부러졌다.

급하게 종이상자를 뜯어 만든 부목으로 정강이를 고정시켰다. 엄마·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 왔지만 이미 병원 앞은 인산인해였다. 심하게 다친 엄마와 동생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지독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는 “이만 하니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중환자가 속속 실려왔다.

시간이 갈수록 환자는 더 늘었다. 현재 쇼스칼 병원에서 예술라와 같이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는 400~5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병원 앞마당 텐트에 수용돼 있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만 건물 안 병상을 배정받았다. 국경 없는 의사회(MSF) 등 세계 각국 의료진이 속속 도착하고는 있지만 80여 명의 인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벨기에에서 전날 도착했다는 MSF 소속 의사 프로니에 뒤몽은 “이곳에 오는 환자는 가난한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숨지는 환자도 많다”며 “세계 각국의 의료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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