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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혁명’ 6년 만에 뒷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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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7일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선 1차 투표에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율리야 티모셴코 총리(왼쪽)와 야당 후보 빅토르 야누코비치. 빅토르 유셴코 현 대통령은 경제 실정 등으로 민심을 잃어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키예프 AP=연합뉴스]


‘오렌지 혁명’을 통해 탈 러시아, 친서방 움직임을 보여 왔던 우크라이나가 6년 만에 다시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되돌아갈 운명에 처해졌다. 17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친러파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개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현지 언론은 야당 후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59)가 1위를 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2004년 대선 때 러시아가 공개적으로 지지를 표명했던 인물이다. 그가 과반을 득표하면 당선이 확정된다. 과반에 이르지 못하면 다음 달 7일 2위와의 결선 투표가 실시된다. 결선까지 간다면 현 총리인 율리야 티모셴코(49)와의 경합이 유력하다.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티모셴코 역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친서방 현직 대통령인 빅토르 유셴코(55)는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야누코비치가 집권할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등 현 정부의 친서방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 계획도 전면 재검토될 수 있다.

◆‘오렌지 혁명’의 좌절=이번 선거는 유셴코 대통령, 티모셴코 총리, 야누코비치의 3파전으로 진행됐다. 3인은 2004년 ‘오렌지 혁명’ 드라마의 주역들이다. 유셴코와 야누코비치는 당시 여야가 맞바뀐 상태로 대선에서 맞붙었다. 선관위는 야누코비치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자 수만 명의 시민들은 당시 야당의 상징색인 오렌지색 깃발을 들고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였다. 국회의원 티모셴코는 시위를 주도하며 ‘우크라이나의 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뒤 법원의 판결에 따라 재선거가 치러졌고 유셴코가 승리했다. 유셴코는 집권 뒤 ‘자주’를 외치며 러시아와의 관계 절연을 시도했다. 시장주의 경제 개혁을 실시하며 EU 가입도 추진했다. 하지만 주요 수출품인 철광석 값 폭락 등으로 경제난이 닥쳐 왔다. 2008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64억 달러(약 18조5000억원)를 빌렸다.

◆불안해하는 유럽=EU 국가들은 러시아와 흑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를 반기지 않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친러파인 야누코비치가 집권하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계획이 철회되는 것은 물론 2017년 철수키로 합의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주둔 시한이 상당 기간 연장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야누코비치는 흑해 함대 주둔과 천연가스 수송관 관리 문제 등을 러시아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혀 왔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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