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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한우 78%가 1++ 된 비법 … 발효사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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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국내 정상급 육질의 한우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상을 받은 조차환씨의 농장 소들이 사료를 먹고 있다. 좋은 육질의 비법은 공들여 개발한 사료지만, 자연방목 같은 사육 분위기도 이에 한몫한다.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해 한겨울에도 축사를 뻥 틔워 놓았다. [송봉근 기자]


“축사에 들어설 때는 ‘으흠’ 하고 헛기침이라도 해 미리 알려줘야 소가 동요하지 않아요. 안에서 절대 소가 놀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한파가 몰아친 이달 초순 경남 김해의 조차환(57)씨 한우 농장. 기자는 축사에 들어서기 전에 긴 주의사항부터 들어야 했다. 요지는 소에게 절대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게 최고급 육질의 한우를 생산하는 비결의 하나라고 했다. 그에 더해 자연 그대로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축사는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인데도 사방이 휑하니 뚫려 있었다. 소들은 추위에 익숙한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조씨의 농장은 공공기관인 축산물등급판정소가 지난해 12월 선정한 ‘한우 부문 최우수 농가’다. 2008년 10월 1일부터 1년간 출하한 거세 비육우 139마리가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두 1등급 이상 판정을 받았다. 특히 최고 등급인 ‘1++’가 78%에 달했다. 전국 평균(15%)의 다섯 배가 넘는다.

스트레스가 거의 없고, 자연과 비슷한 환경이 이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핵심 비결은 더 중요한 데 있었다. 그건 축사에 들어서자마자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축사에선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치 막걸리 익는 냄새 같았다. 조씨는 축사 통로에 띄엄띄엄 쌓아둔 사료 무더기를 뒤적이며 “자체 개발한 이 발효 사료가 육질을 좋게 하는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조차환씨가 자체 개발한 발효 사료를 소에게 퍼주고 있다.

사료 무더기에서는 냄새와 함께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올랐다. “어떻게 만드느냐”고 묻자 처음엔 “30년 가까이 고생해서 터득한 노하우를 쉽게 알려주겠느냐”며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꾸 캐묻자 조씨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축사 끝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축사 구석에는 가로·세로·높이가 3m가량인 사료 원료 삶는 기계가 있었다. 이 기계에 쌀겨·보릿겨·콩비지·옥수수 등 원료를 넣고 적당히 삶은 뒤 미생물제제와 볏짚 등을 섞어 12시간 발효시킨다고 했다. 옛날 방식 비슷하게 쇠죽을 끓인 뒤 발효시켜 소에게 주는 것이다. 조씨는 “‘누룩·막걸리 먹인 소의 고기 맛이 좋다’는 옛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귀띔했다.

조씨는 중학 졸업 뒤 부모 밑에서 소 키우고 농사 짓다가 1982년 결혼과 함께 독립해 암소 20~30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소가 자주 죽어 나가 손해가 컸다. 주위에서 “당신은 소 키우는 적성이 아니다. 그만두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은행에서 돈을 꿔 암소 사육 마리 수를 늘렸다. 그럭저럭 농장을 운영하던 그에게 2006년 낭패가 또다시 찾아왔다. 브루셀라병이 번져 50여 마리를 폐기 처분해야 했다. 6개월간 축사를 비웠다가 2007년 초, 이번엔 거세 육우를 키우기로 했다. 수송아지 170마리를 사들이는 한편으로 육질 개선에 도전했다.

김해 인근의 이름난 한우 농가를 돌아다니며 사료 비법을 귀동냥했다. 그런 가운데 맛 좋다고 소문난 농가는 발효 사료를 먹인다는 걸 알게 됐다. 김해에서만 쓰는 독특한 방법이었다. “발효 식품인 김치와 요구르트가 몸에 좋다잖아요. 소도 발효 사료를 먹고 위와 장에 좋은 미생물이 들어가면 소화도 잘 시키고 육질이 좋아지는 겁니다.”

누구도 자세한 발효 사료 제조법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사료 원료 배합 비율과 발효 방법이 서로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씨는 “왕도가 없는 만큼 나만의 방법을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배합 원료와 비율, 발효 시간을 바꿔가며 소에게 먹여봤다. 결국 그만의 방법(이건 절대 비밀이라고 했다)을 찾아냈고,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한우 생산 농가가 됐다. 그의 축사에서 소 배설물 냄새가 거의 없는 것도 바로 이 사료 덕이라고 했다. 소의 위와 장에 사는 미생물이 워낙 좋은 까닭에 소화·흡수가 잘 돼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사료가 핵심 비결이라지만, 다른 조건도 많다. 무엇보다 좋은 혈통의 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키울 수송아지를 고를 때는 30년 경험과 안목을 갖춘 그가 항상 직접 우시장에 나가 고른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견학자 등 외부인 출입도 엄격히 막는다. 기자의 취재도 처음엔 한사코 고사하다 끈질긴 요청에 결국 허락했다. 심지어 기른 소를 내다 팔 때도 과밀 수송에 따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한 트럭에 한두 마리만 싣는다. 이렇게 키운 그의 소는 등급이 높을뿐더러, 같은 등급이라도 마리당(지육 400㎏ 기준) 40만~80만원을 더 받는다고 한다.

지난해 9억9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린 그는 축사를 신축하고 139마리였던 소를 327마리로 늘리면서 10억원의 빚을 졌다.

“빚을 져도 마음은 든든합니다. 잘 될 거예요. 사료 때문만은 아닙니다. 농장이 잘 된다는 소식에 한두 해 전에 대학 축산과 등을 졸업한 두 아들이 차례로 농장에 합류했으니까요.”

김해=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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