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애 안 낳는 사회] 12. 인구도 결국은 양보다 질<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 저출산 대책으로 교육 등 인구의 질 향상도 필수다. 사진은 지난해 서울의 한 어린이집 운동회 모습. [중앙포토]

"저출산 대책은 단순한 인구부양이 아니라 '가치'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결혼.가족.자녀를 생각하는 국민의 기본인식이 변해야 한다."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 8월 12일 취임연설에서 이례적으로 저출산 문제를 꺼냈다.

저출산 문제가 세계 주요 국가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한국도 저출산 현상을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애 안 낳는 현상은 나라마다 장기간에 걸쳐 국민의식과 경제.사회 구조가 바뀐 결과다. 일본.유럽 등이 1970, 80년대부터 다양한 정책을 동원해 출산을 장려했지만 획기적으로 인구를 늘리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구나 저출산 시대에도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유지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과거 '고출산 시대'에 맞춰진 생각의 틀과 사회 시스템 등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남녀평등 가치관 정립 등 필요=저출산 시대 대책으로 우선 노인과 여성 인력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현진 수석연구원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메우려면 고령 인력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노동시장 체체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일정 연령이 지나면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줄이는 대신 정년을 늘려주는 이른바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본격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남성(74.6%)보다 낮은 수준인 여성(48.9%.대졸 여성은 56.6%)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이 출산.육아 등에 부담을 느끼지 않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한국여성개발원 장혜경 연구위원은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 및 가사부담이 출산 기피의 큰 원인이 되는 만큼 남편도 똑같이 가정 일을 분담하는 남녀평등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교육 등 인구의 질 향상이 숙제=저출산 대응전략으로는 건강과 교육 향상이 손꼽힌다.

청와대의 '고령사회 대책 및 사회통합기획단'은 국가 실천전략으로 "가족생애주기에 맞춘 평생건강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모자보건 및 건강관리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생아의 건강한 성장 등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영아사망률(영아 1000명당 사망수.1999년)은 6.2 수준이다. 일본(3.2).프랑스(4.6).독일(4.4).영국(5.6) 등 비슷한 시기(2000년)의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은 실정이다. 미국(6.9)의 경우 흑인과 열악한 의료보험체계로 인해 다소 높다. 특히 출산시 저체중아(2.5㎏ 미만)의 비율을 보면 93년 전체의 2.6%에서 2003년엔 4.1%로 증가했다.

대구가톨릭대 박정한(예방의학)교수는 "만혼으로 산모 연령이 높아지는 데다 인공수정으로 쌍둥이 출산이 많아져 저체중아 비율이 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시설은 열악하다고 지적한다. 세브란스병원 이철(소아과학)교수는 "인큐베이터 등 미숙아 치료 시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없다 보니 대학병원의 경우 연간 6억원 이상씩 적자를 보는 실정"이라며 "현행 건강보험에서 신생아에 대한 수가가 비현실적으로 낮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교육 수준을 높여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위해선 100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빈곤층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양육.보호제도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현도사회복지대 이태수 교수는 "최근 빈부격차 확대로 급증하는 빈곤아동은 일반아동에 비해 학력과 건강 등에서 뒤처지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이를 방치할 경우 미래의 국민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타적 이민정책 재검토를=미국은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의 출산율(2.1명)을 유지하고 있다. 이민인구의 영향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민가구의 출산율은 전체 출산율의 두배 이상이다. 독일도 저출산 현상이 심해지자 2000년에 국적법을 바꿨다. 이같이 서구에선 저출산에 따른 인력부족 대안으로 이민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이민자들은 대부분 젊기 때문에 당장 노동력 공급이 가능하고, 납세를 통해 고령자를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민에 배타적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화(定住化)를 막는다는 이유로 3년 이하 단기체류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다.

김현진 수석연구원은 "인력은 상품과 달라 우리가 필요하다고 당장 수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장기대책으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된다면 지금부터 이민에 관한 종합적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김시래(팀장), 신창운 여론조사전문위원,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신성식.신예리.박혜민.김영훈.김정하.하현옥 기자, 박경덕 파리특파원, 예영준.김현기 도쿄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