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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론…경제 진단 (2)] '비상경제위원회' 설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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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7면

소위 총체적 난국을 야기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1년 넘게 끌면서 금융기관의 부실만 키우고 있는 대우계열사의 처리 지연, 우선은 덮어 놓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현대의 유동성 문제, 흉내만 냈다는 비판을 받는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 반도체 경기의 하강 가능성,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와 사회풍조로 맞이한 고유가 쇼크, 포드의 대우차 인수 포기 결정 등이다.

여기에 더해 공적자금 조성 지연, 금융지주회사법 등 구조조정 관련 법률 처리 지연, 한빛은행 부정대출 사건의 졸속 수사, 의약분업 사태에 대한 미숙한 대응, 공기업 최고경영자의 정치적 임명과 부실경영, 일방적이고 굴종적인 대북 자세, 선거비용 편파수사 의혹, 국회법 날치기 통과 파문, 코스닥 시장의 인위적 부양으로 인한 부작용 등이 누적돼 국정의 리더십에 대한 심각한 신뢰의 위기가 다가온 것이다.

소위 포드 사태로 인해 제2의 경제위기 확률이 50%를 넘어가는 중이다. 잘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 신용도가 다시 하락할 수도 있는 국면이다. 그동안 자본시장은 여러번 경고 신호를 보내왔다.

지금은 정부가 확고한 문제 해결 의지와 해결 능력에 대한 신호를 시장에 보낼 때다. 경제가 최우선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이 말로만 그치지 않고 분명한 정책과 행동으로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국적으로 지력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상명하복의 문화에 익숙한 관료사회의 역량만으로는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전략과 정책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같은 요소를 갖고도 배치와 상호작용을 달리하면 판이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경제위기 타개를 위해 민간인 전문가가 과반수 이상 참여하는 '비상경제위원회' 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목걸이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난국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알고 있는 도사는 없다.

그러나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문제에 밝은 전문가들이 활발한 토론을 거쳐 정책방향과 실천방안에 합의하고 정부가 이를 충실히 집행한다면 국내외의 높은 평가와 함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 해결책은 분명히 있지만 자격있는 전문가들간의 활발한 상호작용 없이는 찾아지지 않는다.

위기 돌파에 필요한 정책과제를 살펴본다. 대우차 문제는 헐값에라도 GM 등 외국의 자동차 회사에 인수시키는 방안(가능성 자체에 대한 검토 포함)과 채권단의 위험부담 또는 공적자금 투입으로 정상화 계획을 먼저 추진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에 지분의 해외 매각 등을 추진하는 방안을 면밀히 비교한 뒤 결정해야 한다.

금융구조조정의 목표는 금융기관의 건전화로 단일화해야 한다. 소유구조에 연연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부실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은 우리 경제 위기탈출의 필수조건이며 이를 위한 법과 제도의 과감한 개혁과 함께 실행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자본시장에서 기업가치의 평가가 정상화되려면 기업 인수.합병(M&A)의 활성화 정책이 필수적이다. 신속한 시행이 필요하지만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신용미비 기업을 위해서는 정크본드시장을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

21세기 신경제의 주역인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은 국민의 정부 최대의 치적 중의 하나이자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정책이다.

다만 정부의 지원은 환경조성과 제도적 지원에 그쳐야 하며 모든 첨단 산업 분야로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 정책 역시 불공정 내부거래와 대주주의 전횡 억제에 초점이 모아져야 하며 이들에 대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요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부와 정치권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감축하기 위해 총력을 쏟아야 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온 국민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여론의 힘이 강해진 시대에 버티기식, 응급처방식, 덮고 섞고 미루기식의 문제해결 방식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단기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장기적 안목과 확고한 실천력으로 국가의 역량을 결집해 위기를 정면 돌파할 수 있는 경제관리체제를 구축하는 것만이 제2의 경제위기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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