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5주년…중앙일보에 바란다] 지은희 여성단체연합 대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지난해 3월께 중앙일보 기자 10여명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시민단체 주요 인물들을 차례로 초청해 인사를 나누고 상호 관심사에 대해 자유스런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는 'NGO포럼' 이란 자리였다.

당시만 해도 시민단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아직은 미약했던 터였기에 이같은 시도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1년 뒤 4.13총선을 앞두고 총선연대라는 시민단체연대 기구가 활발한 활동을 펼칠 무렵, 이에 관한 중앙일보의 각종 분석기사와 발로 뛰어 발굴해 내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과연 미리 준비해온 신문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신문이 국민 모두의 정치.사회적 인식과 태도를 방향지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현실 속에서 중앙일보가 그 힘을 또 하나의 '권력' 으로 변질되지 않고 사회의 '등불' 이 되겠다는 의지를 파악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기획취재물은 중앙일보를 읽는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다. 예컨대 총선 때 판도를 미리 분석하는 분석기사나 최근 의약분업 관련 기획보도 등은 독자 입장에서 커다란 도움이 됐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하는 NGO면을 꾸준히 키워온 점, 독자위원회를 두고 독자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지면에 반영하는 것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중앙일보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치적으로 편파적 경향이 강하다. 중립적이어야 할 정치관련 기사가 특정 정치집단에 유리하도록 선택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독자의 눈에 그렇게 비치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아니라고만 할 게 아니라 독자들의 지적을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아니면 떳떳이 한 정파를 지지한다고 밝히는 것이 낫다.

중앙일보는 또한 '어정쩡하게' 보수적이다. 세계적 흐름에 일면 대응하면서도 남북.재벌개혁 문제 등에 대해서는 보수적 입장을 못벗어나 사회의 균형있는 발전 방향을 제시하지 못할 때는 읽을 마음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동일한 사건에 대한 입장이 통일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 독자들을 혼란케 하곤 한다. 지난 총선 때의 낙선운동에 대해서도 그 평가가 시기에 따라 달라졌고 심지어 같은날 신문에서도 사설과 기사의 논조가 엇갈리기도 했다.

물론 다양한 목소리가 한꺼번에 표출된다는 점은 그만큼 내부 논의가 활발하고 민주적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반증으로서 다른 신문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 눈에는 마치 내부 조율조차 거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다양한 의견은 바람직하되 사설.칼럼.기사가 따로 노는 듯한 무질서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진정 권위있고 공신력있는 신문으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영향력있는 신문일수록 기대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비판을 적극 수렴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신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은희 <여성단체연합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