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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시의 의미에서 애들이 해방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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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말놀이 동시집 5
최승호 시, 윤정주 그림
비룡소, 147쪽
1만500원

『말놀이 동시집』이 완간됐다. ‘모음’ ‘동물’ ‘자음’ ‘비유’편에 이어 신간 ‘리듬’ 편까지 모두 다섯 권이다.“등대에 등 대/등 대/사진 찍어 줄게/등 대/등대에 등 대라니까”(‘등대’) 같은 ‘말장난’의 묘미가 동시 371편에 오롯이 담겼다. 뜻보다 소리를 앞세운 시, 교훈보다 재미를 강조한 시다. “징징대지 마/너 자꾸 애처럼 징징대면/나 정말 징 친다/징/징/징/징”(‘징’), “도롱뇽 노래를 만들었어요/ 도레미파솔라시도/ 들어보세요// 도롱뇽/ 레롱뇽/ 미롱뇽/ 파롱뇽/ 솔롱뇽/ 라롱뇽/ 시롱뇽/ 도롱뇽”(‘도롱뇽’) 등 한편 한편 읽다보면 실웃음이 실실 흐른다.

이런 넌센스 시집이 2005년 1권 출간 이래 12만부 판매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연마다 행마다 주제를 따지고 상징을 밝혀야 비로소 시 한편 읽었구나, 했던 기존의 시 독법을 생각하면 이변 중에 이변이다. 별 뜻 없이 말을 가지고 노는 시, 그러면서 우리말의 맛과 멋을 알려주는 시의 가치가 인정받은 셈이다. 작가 최승호(56) 시인은 이를 두고 “시의 의미에서 아이들이 해방됐다”고 표현했다.

『말놀이 동시집』의 익살스러운 삽화는 동시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달, 달, 달팽이/팽이, 팽이, 달팽이//달 뜨면 달 이고/더듬 더듬/밤길 홀로 가는 달팽이”(‘달팽이’)의 분위기를 섬세한 펜 선과 수채물감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비룡소 제공]

5권 ‘리듬’편은 말의 음악성에 초점을 맞췄다. “깨비 깨비 도깨비/깜장 도깨비//굴뚝에 숨었나 깜장 도깨비/그믐밤에 숨었나 깜장 도깨비//깨비 깨비 도깨비/깜장 도깨비”(‘깜장 도깨비’)처럼 소리내 읽으면 그대로 노래가 되는 동시들을 묶었다. 작가에겐 지난해 9월 16일 중앙일보·동원그룹 주최 제1회 ‘와!책(와글와글 책꾸러기)’행사에서 드럼 연주가와 함께 ‘타악기로 즐기는 동시의 세계’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단다. “북소리에 맞춰 시를 읽으며 춤추고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시에서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됐다”는 것이다.

말꼬리를 붙잡으며 뻗어나가는 독창적인 연상 과정도 말놀이 동시의 특징이다. “뻔 뻔 번데기/데기 데기 번데기”로 시작한 동시 ‘번데기’가 “그런데 말이에요/바리데기 공주님/번데기 먹어 보셨나요”로 끝나는 식이다. “뽕나무 그늘에서/짬뽕을 먹는데/뽕잎 먹은 누에들이/방귀를 뀌네/(중략)/뽕뽕뽕”(‘짬뽕’)도 그렇다. 소리의 재미를 동력 삼아 상상력이 쑥쑥 자란다. 말놀이 동시가 공허한 말장난이 아닌 이유다.

작가는 “동시 작업은 일단 중단하고 한동안은 시 작업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설주의보’‘그로테스크’ 등 화제작을 발표하며 오늘의작가상·김수영문학상·이산문학상·대산문학상·미당문학상 등을 휩쓴 ‘진지한 시인’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이다. 대신 “아이들이 ‘이 정도는 나도 써’하며 스스로 말놀이 동시를 쓰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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