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레이스] 좌충우돌 부시 자멸의 구렁텅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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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7일(현지시간)은 미국 대선 D-51일이자 로스앤젤레스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난 지 꼭 한 달 되는 날이다. 그동안 대선판세는 엄청나게 변했다.

전당대회 초만 해도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10% 이상 뒤지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8월 17일 후보수락 연설을 기점으로 대추격을 시작, 이제는 여론조사에서 오히려 10% 이상을 앞서고 있다.

왜 이런 대반전이 벌어진 것일까. 핵심은 고어의 전략적 승리와 부시의 전술적 패배로 요약할 수 있다.

고어 후보는 유세 대부분을 민생 이슈를 앞세워 공략함으로써 정치.스타일.개성을 내세워 승부를 걸던 부시 후보와 극적인 대조를 이뤘다. 정치학자들은 고어 후보측 전략이 적중했다고 평가한다.

정치분석가 앤드루 코헛은 "민생 이슈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고어의 대중주의가 보수적 민주당원과 학부모.노인 유권자 및 흑인계층에 먹혀들고 있다" 고 분석한다.

안보나 경제상황에서 유례없는 안정기에 빠져 있는 미국에서 공화당측 정치적 이슈 전략은 약효가 떨어진 반면 민주당의 민생 이슈는 유권자를 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고어는 유대교 도덕론자 조셉 리버먼을 부통령 후보로 선택함으로써 민주당 약점이었던 클린턴의 도덕성.품위문제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면 부시는 이슈를 선도하는 데 실패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악재 시리즈에 시달렸다. 가장 최근만 하더라도 뉴욕 타임스 기자에 대한 비속어 파문, '쥐새끼들' 이라는 저속어가 들어간 대 민주당 TV광고 소동이 이어졌다.

게다가 부시는 대통령 후보 토론위원회의 TV토론 제안에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꼬리를 빼다가 결국 받아들여 수세적인 모습만 보여줬다.

언론은 이를 '항복(capitulation)' 이라고 꼬집고 있다. 딕 체니 부통령 후보에게는 2천만달러 스톡옵션을 받았다는 구설이 따라다니고 있다.

두 달도 채 못되는 기간 과연 부시가 역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고어의 굳히기가 성공할 것인가.

현재 부시에게 희망적이거나 유리한 변수 또는 기회는 별로 보이질 않는다.

우선 부시는 늦었지만 민생이슈 전선에서 정면승부를 걸겠다고 팔을 걷었지만 올림픽이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올림픽이 유권자 상당수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TV 보도시간을 앗아가 대선열기가 2주간 '동작그만' 에 들어갈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는 것이다.

주요 방송사 가운데 그동안 대선보도에 가장 열심이었던 NBC는 올림픽 중계에 7억5백만달러를 지불한 상태여서 올림픽 관련 프로그램에 많은 시간을 할당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이틀 뒤엔 첫 TV토론이 벌어진다. 1차 토론은 무대에 두 후보만 서서 직접 공방을 주고받는 형식인데 부시가 '준비된 토론자' 고어를 몰아붙이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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