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올림픽 2000] 이상기 펜싱 사성 첫 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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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노장 검객' 이상기(34.익산시청)가 3전4기 끝에 한국 펜싱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

이상기는 16일 남자 에페 개인전 3~4위전에서 숨막히는 접전 끝에 마르셀 피셔(스위스)를 15 - 14로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4강까지 승승장구한 이상기는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파벨 콜로브코프를 맞아 2라운드까지 3 - 3으로 접전을 펼쳤으나 3라운드에서 밸런스가 무너져 9 - 13으로 패했다.

이상기는 3~4위전에서 3 - 6의 열세를 뒤엎고 14 - 12까지 앞서 나갔으나 상대에게 거푸 공격을 허용, 14 - 14 동점을 이뤘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공격에서 속임 동작으로 상대를 흔든 뒤 예리한 가슴 찌르기로 경기를 끝냈다.

이상기는 그동안 14 - 14 동점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 올림픽을 앞두고 체육과학연구원으로부터 심리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서울올림픽부터 출전하기 시작한 이상기는 네번째 올림픽 도전에서 메달을 따내는 짜릿함을 맛봤다.

1m87㎝.84㎏의 거구인 이상기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으면서 올해로 20년째 펜싱 선수 생활을 계속 중이다.

1981년 김제 중앙중 시절 칼을 처음 잡은 이는 전북체고 - 한체대를 거치면서 86년 서울아시안게임부터 한국 펜싱 에페를 대표해왔다.

86년 서울, 90년 베이징,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이끌어낸 일등 공신이었고 방콕에서는 개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꾸준한 체력 관리로 남자 최고령 대표 선수가 됐지만 가족 사랑이 지극해 하마터면 한국 펜싱 최초의 메달을 놓칠 뻔했다.

워낙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태릉선수촌에 있다보니 10년 전 결혼한 부인과 아들 둘과 함께 보낼 시간이 없어 지난해에는 태극 마크를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도 있다.

마지막 불꽃을 태워보자는 감독의 설득이 마침내 동메달로 이어졌다.

▶ 이상기는

정통파 스타일로 하체가 안정돼 공격 실수가 적고 빠른 공격이 주특기인 이상기는 한국 선수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아 남자 주장을 맡고 있다.

한국은 개인전 성적으로 시드가 정해지는 남자 에페 단체전에서 4위로 8강을 확보한데다 남자 플뢰레 김영호, 여자 에페 고정선도 대진운이 좋아 메달을 추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드니 올림픽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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