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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386] 2. 대기업 싫어 하지만 취직은 대기업 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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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전경련의 후원을 받는 대학생 단체인 YLC(영리더스캠프)는 지난 7월 신입회원 100여명을 환영하는 시장경제교육 캠프를 충남 천안에서 열었다. YLC는 전경련 후원인데도 경쟁률이 10대 1이 될 정도로 가입하려는 대학생이 많다.

"'내 일'과 관계없는 회사 행사에 왜 반드시 참석하라고 하는가. 나는 차라리 그 시간에 회사에 나와 일하겠다."

게임업체인 넥슨이 지난 7월 창립 10주년 행사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에버랜드 캐리비안 베이에서 전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고 하자 사내 게시판엔 이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이 회사 이재교(34.여)홍보팀장은 "개성을 무시하는 회사 행사엔 참석하지 않겠다는 글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행사를 2개 부로 나눠 1부에선 전체가 참여하는 기념식을 간단히 열되, 2부에선 물놀이.콘서트.보물찾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택적으로 참여하도록 바꿨다.

올해 예상 매출액이 1000억원인 넥슨의 직원 수는 500명 선. 임직원의 평균연령은 27세, 최고령자는 37세, 사장(서원일)도 올해 27세인'젊은 회사'다. 따라서 직원들을 관리하는 방식이나 기업문화가 여느 회사와 많이 다르다. 형식과 절차를 거부하는 직원들이 많아 결재를 최소한으로 줄였고, 그나마도 온라인 방식이다.

실 또는 팀 단위의 경비 처리도 '내 일'이 아닌 '잡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업무만 담당하는 직원도 별도로 있다. 이 팀장은 "사원들이'직장'보다 자신이 만드는'상품'에 훨씬 더 애정이 있어 질리지 않는 회사, 재미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포스트386세대'들은 이처럼 기업문화도 '내것은 건드리지 마라'는 개인주의로 바꾸고 있다.

◆이념보다 실리="대기업이나 (이들의 이익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이들의 후원을 거절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대학생 단체인 YLC(영 리더스 캠프)의 배병주(서강대 전자공학과 4년)회장은 "전경련이 후원한다면 학생들이 가입을 꺼리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전경련 후원이기 때문에 더 인기가 좋다"면서 이같이 답변했다. 명함에도 YLC는 전경련 후원단체임을 떳떳이(?) 밝히고 있다. 그는 "다른 대학생 모임과 차별화가 되는 데다 공신력도 더 높아져 가입하려는 학생들이 줄을 서 있다"고 덧붙였다. 경쟁률은 10대 1 정도라고 한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요즘의 대학생들은 이념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면서 "30대들에 좌.우 이념이나 반 기업정서를 설명하면 토론이 활발해지지만, 학생들은 '고리타분한 얘기는 그만 하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밝혔다. 반면 취업이나 인턴십에는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대기업을 더 싫어하면서도 취직은 대기업에 하려는 의지는 더 강해졌다. 대림그룹 조현제 상무는 "채용면접을 해보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원하는 경향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 밝혔다.

소비행태도 '똑똑하게 쓰고, 똑똑하게 즐기는'쪽으로 변했다. 지난 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변익주(포항공대 기계공학과 2년)씨의 지갑엔 무료시식 초대권과 생일축하 쿠폰 등이 10여장 들어있었다. 그는 "다른 학생들보다 쿠폰을 적게 갖고 다니는 편"이라면서 "쿠폰을 쓰면 싸게 음식을 먹거나 영화를 볼 수 있는데 왜 '온 돈'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포스트386이 더 보수적=젊을 땐 진보적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돼가는 게 지금까지의'공식'이었다. 그러나 경제에 관한 한 이런 공식은 깨지고 있다.

포스트386세대가 386세대보다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더 긍정적으로 나타나면서다. 이들은 집단보다 개인을 더 중시한다.

넥슨의 이 팀장은 "우리 때만 해도 학생운동 등 사회참여가 활발한 편이었는데 지금 세대는 개인적 취미활동에 훨씬 더 관심이 크다"고 밝혔다. 대학생인 배병주씨도 "시위를 하면 참가하는 학생이 10명이 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사원 채용과 교육훈련 방식도 변하고 있다. 삼성그룹 인력개발원 신태균 상무는 "사람을 뽑을 때 예전엔 인화와 조직적응력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독창성과 끼를 더 중시한다"고 한다.

대림의 조 상무는 "교육도 집체 방식에서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혼자서 할 수 있는 온라인 교육 위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진작부터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 대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신입사원 이력서를 보면 자신이 참여한 단체와 캠프 활동은 물론 어디에서 인턴십을 받았는지 등이 빼곡히 들어 있다"면서 "대학생 때부터 커리어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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