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새음반 음악평론가 평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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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발매일을 손꼽아 기다렸던 팬들이 음반 매장에 줄을 잇는다.

이 정도의 수퍼 스타가, 그것도 단순한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한 시대의 문화적 맥을 쥐고 있는 스타가 우리에게 있다는 건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이다.

그에 의해 한때는 메이저 음악판의 구태의연한 관행이 뒤흔들리던 적도 있었다. 그의 그런 힘은 시스템 자체를 문제삼았던 그의 전략과 무엇보다도 음악의 창의력과 솔직함, 그리고 진지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재컴백 앨범은 떠남과 돌아옴의 반복을 통하여 형성된 서태지의 신화를 십분 활용한 신비화 전략의 측면에선 성공을 거두었는지 모르지만 음악적으로는 그렇게 큰 성취를 이룬 것 같지는 않다.

한 마디로 이번 앨범의 서태지는 자기가 구축해놓은 스타일을 답습하고 있다. 물론 샘플의 선택은 신선하고 사운드는 빵빵하고 흐름도 서태지답다.

서태지의 핵심 중 하나는 디테일이다. 록 음악이면서도 디지털 신호로 제어되는 시스템을 택했기 때문에 힙합적인 느낌의 그 디테일들은 완벽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 디테일들은 곡 전체에 전광석화같은 변화를 끌어내는 작용을 한다. 그러면서도 곡 전체의 흐름에 비추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들린다.

이번에도 곡 구석구석에서 그런 그의 음악적 재능은 발견된다.

그러나 스타일 면에서는, 그가 이미 90년대 중반에 구축한 그만의 것에서 별로 벗어나 있지 못하다. 음악 수련기에 그가 세례받은 음악은 헤비 메탈과 힙합이다.

그 둘이 융합되어 90년대의 서태지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일종의 랩 메탈, 혹은 하드코어, 요즘 용어로는 '핌프 록'이라 불리우는 계열의 음악이 그것이다.

'하여가' '교실 이데아' 등에서 실험된 그러한 시도는 매우 앞선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림프 비즈킷 같은 밴드의 스타일을 서태지는 훨씬 일찍 시도한 것이다. 그건 분명히 음악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리 대단하게 들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컴백홈' 앨범에서부터 집중적으로 들리기 시작하던, 스매싱 펌킨스를 연상시키는 서정적이고도 힘있는 멜로디의 얼터너티브 록의 분위기는 이번 앨범에서 발견할 수가 없다.

그 쪽이 서태지의 음악이 가는 길 위에 뿌려진 새로운 씨앗이었는데, 아쉽다. 28초짜리 브릿지 곡인 '표절' 만큼은 신선하게 들렸다. 그러니 아주 조그만 씨앗은 뿌린 셈인가.

물론 쓰레기 댄스만이 난무하는 메이저 음악판에서 이 정도의 강력한 하드코어 음악이 유통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은 좋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음악은 이미 닥터 코어 911이나 힙포켓, 크래쉬 등 우리의 하드코어/랩 메탈 계열의 밴드가 괜히 미국 왔다갔다 안하고도 이 땅에서 만들어냈던 것들이다.

나는 서태지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아끼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신화와 전략 만이 남고 음악은 점차 과거의 것이 되어가지 말고, 앞으로 계속 활동하면서 다시 불을 지피기 바란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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