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 가족의 참뜻 되돌아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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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마흔세 살의 노처녀 정정희씨.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 임정희(73)씨를 홀로 간호하며 살아가고 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어머니는 치매환자.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입 밖으로 혀를 쑥 내밀거나, 가끔씩 발가락을 까닥이는 것이 고작이다.

딸에겐 그 동작이 "나를 두고 가라" 는 절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딸은 서러운 마음에 통곡한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모두가 흥겨워지는 요즘. 주위를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이웃이 많다. 흩어진 가족들이 모이며 즐거워하는 남들을 보면 오히려 자신의 처지가 더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MBC 스페셜 '모녀' (8일 밤 9시55분)는 이처럼 소외된 이웃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하는 작품이다.

프로그램은 일단 시청자들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모녀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덧 눈가를 훔칠 수밖에 없게 된다.

남아선호 사상이 아직도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정씨의 어머니는 시집와서 딸만 여섯을 낳았다는 이유 하나로 소박을 맞았다. 게다가 20여년 전 이혼서류인 줄도 모르고 도장을 찍으면서 맨몸으로 쫓겨났다. 물론 아버지는 재혼해 잘 살고 있다.

이후 뿔뿔이 헤어지는 정씨의 가족. 정씨만이 치매에 이어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고 있다.

정씨의 희망은 어머니가 울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한번 불러주는 것. 그래도 딸은 어머니에게 늘 좋은 것만을 해주고 싶다.

속옷 가게에 들러 어머니가 입을 반바지를 고르면서도 예쁜 것을 달라고 몇 번이나 요청한다.

"엄마, 일어나서 5년만 더 살아요. 그럼 내가 정말 잘 해 줄께…. " 그러나 이제 딸도 지쳤다.

늦은 나이지만 '짝' 도 만나고 싶다. 어머니가 누워 있는 동안 한 잔 두 잔 먹던 소주도 알코올 중독을 걱정할 단계까지 됐다. 그래서 주변의 권유로 어머니와 헤어지려 한다. 어머니를 맡길 병원도 답사했다.

전편에 흐르는 어머니와 딸의 한스런 세월이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곰곰 생각하게 한다.

김철진 PD는 "운명 같은 두 모녀의 기록, 그리고 병든 어머니를 둘러싼 가족들의 반목을 통해 하루가 다르게 각박해지는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려고 했다" 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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