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실 공시때 매매정지 제재 옳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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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초보 투자자인 회사원 李모(39)씨는 얼마 전 코스닥기업인 A사의 주식을 온라인을 통해 팔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는 깜짝 놀랐다. 이 회사 주식이 하루동안 거래중지된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알아본 결과 A사는 불성실 공시를 한 '벌' 로 이런 제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 합작법인에 투자한다는 올해 초의 공시를 며칠 전에 번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李씨는 회사측의 공시번복으로 투자자인 자신이 왜 주식을 팔고 싶을 때 팔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 규정에 따르면 '공시번복, 공시변경의 경우 사유발생 시점 다음 날의 매매거래를 중지한다' 고 돼 있다.

올들어 지금까지 이같은 이유로만 매매거래를 정지당한 종목은 거래소 9건, 코스닥 15건으로 모두 24건. 한달에 세건 꼴이다.

코스닥증권시장의 유시왕 전무는 "불성실 공시 기업을 제재,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것" 이라고 규정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규정은 불성실 공시에 대한 제재를 투자자들에게 떠넘긴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주식시장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것" 이라며 "해당 회사에 벌을 준답시고 제재를 가하지만 효용성은 커녕 투자자들만 골탕먹이는 꼴" 이라고 지적했다.

LG투자증권의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투자자들이 냉각기를 갖는 효과도 있지만 요즘처럼 매매가 빈번하고 정보의 주가반영도가 빠른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매매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옳지않다"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의 이갑수 자본시장감독국장은 "회사에 특수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현재로선 거래정지 시킴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 외에 대안은 없다" 고 말했다.

장범식 숭실대(기업금융)교수는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매매거래 정지는 불합리하다" 며 "소송을 통해 불성실 공시로 인한 손해를 회사로부터 보상받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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