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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디지털카메라로 취재현장 나서는 'VJ'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날씬하면 고맙다고? 여자 친구의 몸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상의 '작은' 이야기에서 재미와 감동을 퍼올리려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도 날씬함은 더없이 고마운 미덕이다.

육중한 방송용 카메라 대신 소형 6㎜ 디지털 카메라 한 대로 혈혈단신 취재현장에 나서는 VJ(비디오 저널리스트)들이 최근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다.

예컨대 KBS 'VJ특공대' 나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등이 VJ들의 취재만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프로그램. 여성전용 불한증막의 풍경, 의(擬)모자 관계인 개와 고양이 등 다큐멘터리의 문턱을 대폭 낮춘 아이템을 발굴해 교양 프로그램이면서도 평균 15%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한다.

"방송시스템을 좀 아는 분들은 왜 이렇게 카메라가 작냐고 처음에는 의아해 하세요. 하지만 저희가 만나는 분들 대부분은 방송 카메라를 처음 접하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처음엔 카메라를 옆구리에 끼고, 얼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필수적입니다.액정으로 촬영화면이 대충 보이니까 카메라 렌즈에 눈을 꼭 붙일 필요는 없거든요. "

SBS '순간포착…' 팀에서 활동중인 손문권(28)씨의 말이다.이처럼 VJ들의 단촐한 차림은 카메라에 대한 취재원의 부담감을 없애 일상의 생생한 목소리를 손쉽게 낚아챈다.

연출.카메라.조명 등 일개 부대를 이끄는 대신 혼자 움직이니까 해외 촬영이나 장시간 촬영도 부담이 적다.

KBS 'VJ특공대' 를 제작하는 독립프로덕션 허브넷의 최호준(33)씨는 지난 주부터 서울시내 한 소방서에서 대기 중이다.

언제 벌어질 지 모르는 화재현장 출동장면을 찍으려니 끼니를 대신할 빵과 이온음료는 필수품. 한 꼭지당 방송시간은 15분이 채 안되지만, 촬영기간은 적게는 나흘, 많게는 열흘까지 투자한다.

40분짜리 테이프 스무 개 남짓, 평균 10시간 이상의 테이프를 방송용으로 편집하는 데만도 이틀이 꼬박 걸린다.

최 근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 '허리케인과 떼제베' 팀의 불법 퇴폐업소 단속현장을 동행했을 때는 무려 다섯 명의 VJ가 각각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따라붙었다.

10㎏에 육박하는 무게에다 별도의 조명이 필수적인 일반 방송용 카메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SBS '순간포착…' 팀 역시 기동성이 중요한 요소. 여의도 증권빌딩에 딱새가 갇혔다는 제보 전화 한 통에 '딱새구출작전' 을 상상하며 냉큼 택시를 잡아타고 달려간다.

하지만 막상 가 보니 직원들이 사무실에 날아든 딱새가 신기해 창문을 닫아둔 것 뿐이라는 식으로 허탕치는 경우도 빈번하다.

제작진들이 애착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일상에서 이야기를 발견하는 경우다. 이태원 밤거리를 매일 청소하는 아주머니, 평생 상복을 입고 사는 할아버지, 동네 온갖 고물을 수집하는 할아버지 등 여간해서는 취재에 응하지 않으려는 보통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접근해 숨은 사연을 찾아낸다.

VJ가 '비디오 쟈키' 가 아닌 '비디오 저널리스트' 의 약자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간첩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재일 한국인의 사연을 기획.취재.촬영.편집 1인 4역으로 제작해 일본 방송사에 공급한 안해룡씨(39)등의 활동이 소개되면서다.

반면 최근 생활밀착형 다큐로 시선을 모으고 있는 VJ들은 스스로를 '저널리스트' 의 무게감보다는 '카메라를 든 다큐PD' 로 평가하는 경향이 짙다.

일 상의 틈새를 방송사 바깥에서 2백만원 안팎의 디지털 카메라로 담아내는 VJ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준다.

'VJ특공대' 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일반 시청자들의 제안이 빈번하게 올라온다. '재야' 의 VJ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에 방송사의 문이 활짝 열려야 한다는 게 그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물론 과제도 많다. Q채널의 이창재 PD는 "무엇보다 장비.취재력을 보완하고 VJ연합회 등 조직력을 키워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고 지적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VJ의 미래를 주목한다. 특히 내년에 시작할 위성방송의 숱한 채널을 채우려면 이들 VJ의 활동반경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세상사의 모세혈관을 파고드는 VJ의 융성은 방송계, 나아가 우리 영상문화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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