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6대 첫 정기국회] 딱 10분 열고…예고된 파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다음 본회의는 의사일정이 결정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

2000년 정기국회 개회식이 10분 만에 끝난 1일 오후 2시20분 여의도 국회 의사당. 의사국장의 안내방송과 함께 흩어지는 국회의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한달 만에 만난 여야 의원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악수를 나눴다.

민주당의 정균환(鄭均桓).한나라당의 정창화(鄭昌和)원내총무는 개회식 뒤 협상을 벌였지만 깊이 파인 감정의 골을 메우지 못했다.

두 총무는 1백일간 정기국회를 운영할 일정표를 짜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정창화 총무는 7.24 날치기 처리안에 대한 여당의 사과, 부정선거 은폐.축소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조사, 특별검사 도입 요구 등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정균환 총무는 "모든 것을 국회에 들어와 논의하자" 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회 문제는 이미 총무들의 정치력만으론 풀기가 불가능한 지경까지 왔다는 게 여야 의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개회식에 앞선 의원총회에서 "과거 우리당 의원 38명을 (여권이) 빼내갈 때 마산.대구 등 집회를 통해 막아냈다. 옷로비.파업유도사건 때도 특검제를 얻어냈다" 고 소리를 높였다.

李총재는 "대정부 투쟁을 강경하게 하고 장외집회를 통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은 "李총재가 억지를 부리는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며 "정략적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고 비난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李총재가 이번에 김대중 (金大中)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내고 정국 주도권을 빼앗겠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착각" 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원외투쟁 불사입장에 따라 새 정치문화의 실험이 기대되던 16대 첫 정기국회는 또 다시 헝클어질 것 같다.

국회 실무자들이 작성한 '예상 일정표' 엔 ▶20일간 국정감사▶여야 대표연설▶대정부질문▶결산 및 2001년 예산안 처리 등 안건들이 빼곡이 적혀 있다.

특히 두달 동안 지연된 추경안이 시급히 처리되지 않으면 1백만명에 이르는 생활보호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과 생계가 어려운 18만7천가구의 중.고생 자녀 학비지원이 어렵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얘기다.

발효와 함께 집행될 5인 이하 사업장 근로자 4만3천명에 대한 최저임금 지급을 규정하고 있는 최저임금법도 여야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합의, 통과해놓고도 국회 파행으로 잠자고 있다.

역시 재경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금융지주회사법(금융개혁)과 기업구조조정 투자회사법같은 개혁법안도 마찬가지. 정치권 기세싸움에 민생과 개혁은 방치돼 있다.

전영기.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