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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직동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도성을 한양으로 옮기기로 한 태조 이성계는 우선 사직단(社稷壇)과 종묘(宗廟), 궁궐이 들어설 자리부터 정하게 했다.

정도전이 그려온 도면을 들고 직접 터를 살폈다. 터를 닦고 재목 준비가 끝나 공사에 착수했으니 태조 4년(1395년) 정월이었다.

지신(地神)과 곡신(穀神)을 각각 상징하는 사와 직을 받드는 제단인 사직단이 먼저 완공됐다. 땅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고 오곡이 나야 사람이 생존할 수 있으므로 사직을 잘 모셔야 한다는 믿음은 왕조시대의 확고한 전통이었다.

지금은 서울 사직동과 사직공원에 동네와 공원 이름으로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직동 소재 안가(安家)에 있다 해서 청와대 '사직동팀' 이란 별명이 붙은 경찰청 조사과가 또다시 사람들의 입살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말 세상을 온통 시끄럽게 했던 '옷 로비 사건' 축소.은폐 의혹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고위층의 입김에 따라 사직동팀이 개인에 대해 보복성 청부수사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사자인 전 신용보증기금지점장 李모씨가 엊그제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李씨는 청와대 행정관의 대출보증 청탁을 거절한 '괘씸죄' 로 무고한 비리 혐의로 사직동팀의 집중조사를 받으면서 자리에서 물러나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주장한다.

사직동팀의 뿌리는 1972년 발족한 치안본부 특별수사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와대 특명사건 수사와 고위공직자 비위 관련 정보수집을 목적으로 출범했다가 76년 특명사건을 전담하는 특수1대(사직동팀)와 치안본부 기획수사를 맡는 특수2대(신길동팀)로 나눠진다.

신군부 집권 이후 특수2대는 경찰청 공식편제에 흡수됐지만 특수1대는 이름만 조사과로 바꾼 채 여전히 사직동에 남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할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후보 시절 DJ 자신이 사직동팀이 벌인 불법계좌추적의 피해자였다. DJ정권 들어 해체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 비리 내사를 위해서는 그대로 둘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청와대측 설명이다.

대출청탁과 무관한 조사였다고 청와대는 반박하고 있지만 만의 하나 李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직통팀은 본분을 벗어나 권력집단의 사(私)경찰로 편법운영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하루가 멀다고 해괴한 일들이 터지는 데다 태풍까지 겹쳐 세상이 뒤숭숭하다. 왕조시대도 아닌데 사직단에 가서 제사라도 올려보라고 할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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