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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서울을 '초능력도시' 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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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람의 머리는 다른 동물과 달리 미완성인 채로 태어난다. 인간은 생체의 유전자 이외 그가 속한 세상의 문화적 유전인자와 함께 자기를 완성한다.

인간과 인간집합체인 도시는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인간집합이 바로 도시이므로 인간은 그가 사는 도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2차적 유전자인 문화유전자가 바로 그가 사는 도시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인격이 있고 범인과 초인이 있듯이 도시에도 도시의 격이 있고 보통도시와 초능력도시가 있다.

아테네와 로마와 예루살렘은 플라톤과 카이사르와 예수를 키운 도시다. 르네상스의 피렌체, 산업혁명 당시의 런던, 세계대전 이후의 뉴욕은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 세계도시였다.

무엇이 그 도시들이 그런 역사적 역할을 하게 했는가.

피렌체가 로마와 베네치아를 제치고 르네상스의 중심도시가 되고 런던이 베를린과 파리를 앞서 세계도시가 되고 뉴욕이 보스턴과 시카고를 제치고 유럽과 신대륙을 잇는 핵심도시가 된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세계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상하이와 베이징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인간의 가능성은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더 크다.

비상한 도시가 비상한 인간을 만들어 왔다. 뛰어난 도시에서 인간은 서로 교감한다. 룩소르.바빌론.예루살렘은 예사의 도시가 아니었다.

위대한 도시가 위대한 문명을 낳았다. 문명의 역사는 도시문명의 역사이며 인간은 초능력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자로 키워진다. 초능력도시는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도시다.

한 인간을 초능력자이게 만드는 것이 무서운 집중력에서 비롯하듯 도시의 초능력은 도시의 에너지가 집약된 특별도시구역에 있다.

월 스트리트가 세계 자본시장을 지배하고 타임스퀘어는 어번투어리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대영제국의 깃발이 내렸어도 아직 더 시티는 세계금융시장의 중심이고 웨스트엔드의 관객은 연간 1천3백만이 넘는다.

초능력 도시구역에서 인간은 서로 감응한다. 인간과 인간사이의 감응은 잠자던 인간두뇌의 엄청난 용량을 작동케 한다.

초능력 도시구역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한 때 거대한 실패로 불리던 라데팡스가 유럽의 신도시중심이 되게 한 힘은 무엇이며 독일이 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신도시 중심으로 개발한 포츠타머플라츠가 세계도시구역이 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상하이와 베이징이 21세기의 세계 중심도시로 떠오르게 한 그들 도시의 초능력 도시구역은 어디인가.

상하이와 베이징을 세계도시가 되게 하는 것은 두 도시가 강력한 흡입력을 가진 네트워크시티인 점과 도시의 에너지를 집결케 하는 초능력 도시구역에 전 도시의 에너지를 집결시킨 데 있다.

서울을 세계도시가 되게 할 초능력 도시구역은 어디일까. 서울에는 아직 인간을 교감케 하고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용광로와 같은 초능력 도시구역이 없다.

중세 최고의 계획된 신도시였던 사대문안 서울은 회복하기 어렵게 부서져 있고 서울의 신도시중심으로 계획된 여의도는 물량만 가득한 도시다. 상암동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그 스케일로는 변두리 중심 정도다.

1천만 서울인구와 2천만 수도권인구의 잠재된 에너지를 집약할 수 있는 서울의 세계화네트워크는 공항과 항만과 고속철도로부터 시작한다.

공항과 항만과 고속철도를 연계해 수도권의 에너지를 집합할 수 있는 곳은 용산과 여의도와 난지도를 잇는 한강유역이다.

서울에 초능력 도시구역을 만들려면 한강 한가운데서 승부해야 한다.

용산에 라데팡스만한 도시기능을 집합케 해 사대문 안 서울에 잇고 여의도를 세계적 금융도시로 집중 육성하고, 난지도 상암동 일대에 국제도시구역을 만들어 이들을 한강을 중심으로 인천 국제공항과 경인운하를 통해 황해 공동체 어번네트워크의 중심도시로 만들 수 있으면 서울이 베이징과 상하이보다 앞서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21세기의 초능력 도시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교류보다 먼저 서울의 세계화를 이뤄야 한다. 서울에 초능력 도시구역이 생겨야 한반도에 중심이 생기는 것이다.

김석철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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